[경제시평-박영범] 복수노조 시대의 개막
입력 2011-07-10 17:52
지난 1일 13년간 4번의 유예를 거쳐 사업장단위 복수노조가 시행되자 이틀간 112개의 복수노조가 설립신고를 한 후 주춤해져 일부의 우려와는 달리 아직 큰 혼란은 없다. 112개의 노조 가운데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소속 노조에서 분화된 노조가 80%에 가까운데, 상급단체를 선택하지 않은 노조가 103개에 달한다. 이는 많은 노조가 양대 노총 모두에 실망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택시, 버스사업장 노조가 절반이 넘는 61개로, 사업주가 노조를 관리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사업주와 노조 집행부의 유대관계가 유독 강한 교통업체의 기존 노조에 일반 노조원들이 상당한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노사관계 선진화 입법을 주도한 한나라당 의원 50여명이 복수노조 허용을 유보하는 개정안을 법 시행 바로 전인 6월에 낼 정도로 혼란을 우려했으나 연착륙하고 있는 것은 초기의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법 자체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사업장에 여러 개의 노조 설립이 허용되나 교섭창구는 단일화되어야 한다. 자율적 단일화가 되지 않고 과반수 노조가 없는 경우 노동위원회가 노조원 수에 따라 노측 교섭위원을 배분하여 공동교섭단을 결정하여 준다. 노조가 있는 경우 조직원 대부분이 기존 노조에 가입해 있는 현실에서 기존 노조의 과반수 대표성을 깨뜨릴 수 있는 노조원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노조를 설립해도 큰 실익이 없다.
7월 1일 이전에 체결된 단체협약의 경우 유효기간이 종료될 때까지 기존노조가 소수노조가 된다 할지라도 유효하다. 새로운 노조가 설립되어 다수노조가 된다 할지라도 노사협의회에서 노측 대표의 역할을 할 수 있으나 기존 임금협약이나 단체협약이 만료될 때까지 기존 단협의 개정을 요구할 수 없다. 법 시행 전에 일부 기업에서 기업에 우호적인 소위 ‘알박기’ 노조를 설립한 부작용이 있기는 하나 이 조항이 복수노조가 설립된다 할지라도 기간에 걸쳐 완만하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법 시행이 확실해진 지 1년 반이 넘었기 때문에 사용자 측은 많은 준비를 해왔다. 그동안 사측은 근로자들의 불만요인을 제거하고 복지를 강화하며 다양한 소통채널을 구축하고 공감대 형성을 위한 교육·훈련을 실시하는 등 여러 가지 노력을 해왔다. 최근 성과주의 인사제도를 지향하는 어느 기업에서 성과 부진자에게도 일정부분의 인센티브를 보장하도록 임금체계를 개편한 것은 복수노조 허용을 의식한 조치로 보인다.
노조 설립이 혼란을 우려할 정도는 아니지만 물밑에서는 활발한 움직임이 있다. 서울지하철노조가 주도하고 있는 제3의 노총인 국민노총(가칭)은 이달 안에 설립을 공식 선언할 계획인데, 이미 복수노조 설립신고서를 제출한 인천지하철노조 등 공기업 노조들이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전투적 성향의 민주노총 계열의 사업장에서는 합리적 성향의 노조가 설립되고, 민주노총 사업장에서 온건성향의 노조로 집행부가 바뀐 사업장에는 민주노총 노조 설립 움직임이 있다. 양대 노총이 복수노조 설립의 최우선 공략대상으로 삼는 것으로 알려진 삼성과 포스코에는 아직 노조 설립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지 않지만 사측의 공세에 견딜 수 있는 강한 노조를 설립하기 위해 철저한 준비를 하고 있는 듯하다.
법 시행 전에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단기적으로 복수노조가 설립될 가능성이 있는 사업장은 7∼14%, 중장기적으로 복수노조가 설립될 가능성이 있는 사업장은 31∼37%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법이 가지고 있는 안전장치 등에 기인하여 시행 초기 복수노조 설립은 예상보다는 덜 하겠지만 기간에 걸쳐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복수노조 허용은 우리나라 노동법제도를 글로벌 기준에 맞추고 노조 간 건전한 경쟁을 유도하여 노조활동가가 아닌 노조원을 위해 일하는 노조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노조와 회사, 그리고 회사 구성원이자 노조 조직원인 근로자들의 현명한 판단과 선택에 의해 큰 혼란 없이 복수노조제도가 자리잡는 것이 국민들의 바람이다.
박영범(한성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