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남중] 원전 없는 일본의 여름
입력 2011-07-10 17:52
본격적인 여름이다. 무더위에 기진맥진한 저녁이면 가끔 옆 나라 일본을 생각한다. 그 나라에서는 올 여름 아주 고통스런, 그러나 굉장히 흥미로운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원전 없이 여름나기. 매년 여름엔 전력사용량이 최고조에 이른다. 여름철 전력수요는 안전성을 확신하지 못하면서도 각 나라가 원전을 도입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은 원전을 끄고 이번 여름을 나기로 결정했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지난 1월부터 ‘15% 절전’을 의무화하는 명령을 내렸다. TV에서는 반바지에 샌들 차림으로 근무하는 공무원들의 모습이 나온다. 와이셔츠 색깔까지 흰색으로 맞춰 입는 일본 공직사회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기업들의 실험은 좀 더 파격적이다. 미쓰비시화학은 사무실 근무자를 교대로 반일씩 휴무하도록 해 25%를 절전하고, 신일본제철은 7월말부터 한 달간 ‘주3일 휴무제’를 실시해 최대 30% 전력을 줄일 계획이다. 혼다자동차는 24시간 근무체제로 바꿔 낮에는 작업시간을 줄이고 야간 작업시간은 늘렸다. ‘목·금 휴무, 토·일 근무’로 전환하는 회사들도 많다.
여름이 뜨거워지면 뜨거워질수록 절전과 전력사용 분산을 위한 일본의 실험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그리고 이 유례없는 실험을 통해 우리는 원전 없이 살아가기 위해 인간과 사회, 도시가 양보하고 절제해야 하는 선이 어디쯤인가 확인하게 될 것이다. 만약 그 선이 우리가 감내할 만한 것으로 확인된다면 일본의 실험은 전 세계로 퍼져나갈 것이다.
일본 원전 54기 중 현재 정상적으로 가동되는 것은 17기에 불과하다.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의 여파로 후쿠시마 원전 1∼6호기를 비롯해 14기가 가동을 중단했고, 23기는 가동 중 이상을 일으켰거나 정기검사로 가동을 안 하고 있다. 주민 반대로 검사를 마친 원전까지 재가동하기가 어려워지면 내년 3월에는 원전 54기 모두가 멈출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일본인들은 지금 무더위와 사투를 벌이는 중이다. 그런데도 주민들은 원자로 재가동에 반대하고 있다. 피크타임인 오후 1∼2시에는 정부 지시를 따라 전력사용을 줄이고 있다고 한다. 일본은 원전 없이 이 여름을 무사히 날 수 있을까?
우리나라는 최근 국내에서 두 번째 오래된 원전으로 내년에 30년의 설계수명이 끝나는 월성원전 1호기의 재가동을 결정했다. 정부는 설비 보수 때문에 가동을 중단하던 이 원전을 17일부터 재가동한다고 밝히면서 여름철 극심한 전력난을 이유로 들었다.
김남중 차장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