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시] 아이를 씻기는 여자

입력 2011-07-10 17:51

장석주(1955~ )

늘 씻기를 죽기보다 더 싫어하는 아이를 씻기는 여자

아이의 몸에 묻은 죄라도 씻어낼 듯 아이를 씻기는 데 열심인 여자

아이의 온 몸에 비누 거품 잔뜩 만들어 아이 살갗이 벌겋게 되도록 씻기는 여자

헝클어져 있는 아이 머리를 감기고 빗겨주는 여자

땟구정물 얼룩덜룩한 아이 얼굴을 씻겨

달덩이같이 청결한 얼굴로 만들어놓는 여자

비쩍 마른 아이의 팔다리를 우왁스런 손아귀로 꼼짝 못하게 만들고

독재자처럼 아이의 버둥거림을 제압한 채 아이를 씻기고 있는 여자

아파 우는 아이를 무시한 채 제멋대로 씻기고 있는 여자

별의별 힘든 노동을 다 해서 손등에 파랗게 핏줄이 돋아있는 여자

……(중략)……

이윽고 아이를 다 씻기고 나서 비로소 한번 미소를 머금는 여자.


지면 관계상 마지막 한 연을 생략했다. 일몰의 풍경이라고 한다. 일몰은 많은 풍경을 가지고 있는데, 시인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아이를 씻기는 여자의 풍경이라고 한다. 우악스런 손아귀로 아이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여자. 독재자처럼 제압하는 여자. 우는 아이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하는 여자…. 억척스런 또순이 누님의 이미지가 금방 떠오른다.

세파에 주눅 들지 않는 또순이. 세상 풍파야 다 덤벼 봐, 하고 소리치는 것 같다. 이런 여성들이 동생들 다 키웠고, 시집가서 아들 딸 많이 낳아서 다 잘 키웠다. 오늘의 한국은 거지반 이런 여성들이 만들었다. 여성들을 잘 대해주자.

임순만 수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