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76) 태풍에 붕괴된 ‘호국의 다리’
입력 2011-07-10 17:26
지난 6월 25일 태풍 ‘메아리’에 무너져내린 경북 칠곡 ‘호국의 다리’(옛 왜관철교)는 한국 현대사를 증언하는 문화재랍니다. 구한말 경부선 개통(1905년 1월 1일)과 함께 단선 철교로 출발한 이 다리는 낙동강을 건너는 첫 번째 철제 교량으로 ‘낙동강대교’라고도 불렸답니다. 길이 469m, 폭 4.5m로 축조 공법은 한강철교와 같은 철골트러스 방식이지요.
칠곡군 왜관읍 석전리에서 낙동강을 건너 약목면 관호리와 연결된 왜관철교는 왜관나루∼공암나루 또는 왜관나루∼강정나루의 뱃길에 획기적인 운송수단으로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경부선 복선화와 더불어 1941년 11월 30일 새 노선이 가설되면서 기존 철교는 본래의 운송 임무를 신설 철교에 넘겨주고 국도 4호선의 도로 교량이자 인도교(人道橋)로 바뀌었지요.
사람, 가축, 마차, 차량까지 모두 인도교를 통해 낙동강을 건너다니던 추억어린 이 철교는 6·25전쟁 때 비운을 맞이하게 됩니다. 전쟁이 발발하자 낙동강이 최후의 저지선으로 정해지고, 북한 인민군이 낙동강을 건너는 것을 막기 위해 철교의 폭파가 불가피했답니다. 8월 3일 오후 8시30분 왜관 쪽 두 번째 교각이 유엔군에 의해 폭파되고 말았습니다.
53년 휴전이 되면서 폭파 구간을 목교(木橋)로 연결하여 다시 인도교로 이용했지요. 그러다 목교 구간의 노후화로 79년 11월 통행이 전면 통제됐으나 93년 목교 구간을 철교로 복구한 뒤 보행 전용도로로 개통했답니다. 6·25전쟁사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가 이곳에서 있었고, 혈전의 대가로 자유와 평화를 회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호국의 다리’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교량에 아치형의 난간이 없는 부분이 바로 6·25 때 폭파된 곳으로 전쟁의 상처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일대는 6·25전쟁 50주년을 기념해 ‘낙동강 영원한 평화의 젖줄’이란 주제로 2000년에 열린 낙동강세계평화제전의 행사장이었답니다. 다리 아래 둔치에서 제2왜관교에 이르기까지 중앙무대, 만남의 광장, 장터가 설치되고 낙동강평화 선언식 등 다양한 행사가 열렸죠.
이후 2008년 10월 1일 ‘칠곡 왜관철교’라는 이름으로 등록문화재 제406호로 지정되면서 근대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됐습니다. 콘크리트 교각으로 화강암을 감아 의장이 화려하고 지면에 닿는 부분을 아치형 장식과 붉은 벽돌로 마감하는 등 근대 철도교에서 보기 드문 장식성과 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역사성이 높이 평가됐지요.
100년이 넘게 파란만장한 세월을 겪은 호국의 다리가 태풍으로, 그것도 6·25전쟁 61주년을 맞이한 날에 붕괴됐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소유자인 국토해양부, 관리자인 한국철도시설공단, 문화재 보호주체인 문화재청이 사고 원인과 책임 소재를 분명히 밝혀야 하겠지만, 한국사의 애환이 깃든 호국의 다리가 하루빨리 제 모습을 되찾기를 기대합니다.
문화생활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