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예수는 누구인가

입력 2011-07-10 17:44


(53)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가복음 16장 8절이다.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못하더라.” 여인들은 예수가 부활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천사는 부활 소식을 전하라고 했다. 그러나 여인들은 전하지 못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16장은 마가복음의 끝 장이고, 절로는 20절이 마지막이다. 8절의 특이한 구절 뒤로 9∼20절이 더 있는 것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한국어 성경은 번역본이다. 다른 나라 언어로 된 성경들도 마찬가지다. 신약성경이 쓰인 언어는 헬라어다. 그러나 현재까지 남아있는 어떤 헬라어 성경도 원본은 아니다. 최초로 기록된, 그야말로 단 한 권뿐인 그 원본은 없다. 마가복음으로 말하면 마가라는 사람이 기록한 그 문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성경의 다른 책들도 마찬가지다. 남아있는 성경들은 다 사본이다.

인쇄술이 없었던 때 책을 만들려면 손으로 베꼈다. 필사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실수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래서 베낀 책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런 까닭으로, 당시에는 책 한 권마다 새로운 판인 셈이었다. 성경의 본문 연구에서 가장 기본적인 작업은 사본들을 서로 대조하면서 원문에 가장 가까운 본문을 찾아가는 것이다.

오래된 사본들에 마가복음 16장 9∼20절이 없는 것이 더러 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마가복음이 본래 8절에서 끝나는데, 나중에 뒷부분을 덧붙였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다른 학자들은 8절 뒤에 원래 내용이 더 있는데 분실되었다고 생각했다. 8절에서 끝난다는 게 너무 이상하다는 것이다. 가능한 얘기다. 옛날에는 책이 두루마리 식으로 만 것이었으니까 끝부분부터 분실되는 경우가 많다. 분실된 부분은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의 마지막 부분에 근거해 재구성해서 붙였는데 그것이 9∼20절이란 것이다. 가능한 얘기들이다. 그러나 9∼20절이 있는 사본이 더 많다. 그래서 오늘날 대부분 번역본이 9∼20절을 본문에 넣고, 사본들에 차이가 있다는 설명은 난외주로 처리한다.

그런데 마가복음이 16장 8절로 끝난다고 가정하고 8절을 한번 묵상해보았다. 8절에서 하인리히 뵐의 책 제목이 연상된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유명한 책 제목을 빌려와서 마가복음 16장 8절을 표현해보면 이런 말이 된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까. 그토록 따르고 그렇게 사랑하고 존경했던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데, 그 기쁜 소식을 왜 한마디도 전하지 못했을까. 행복하고 기쁘고 감격스러운 소식은 입을 열어 말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것인데, 왜 그랬을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는 그 상황은 어떤 것일까.

다시 한번, 부활이라는 현상이 무엇인지 얘기해야 한다. 창세 이래로 사람들 경험 속에 한 번도 없었던 일이 일어났다. 하나님의 전권으로 발생한, 그래서 사람에게는 완전히 새롭고 생소한 것이다. 이것이 부활이다. 이것을 어떻게 표현한단 말인가. 절대 타자인 신의 활동에 거의 직접 접촉하면서 생긴 극도의 놀람과 경탄이 여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낯설다 못해 이상한, 이상하다 못해 두려운 현상 앞에서 사람은 말문이 막힌다.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전하려고 말문이 트이는 일은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임재하시고서야 가능했다.

지형은 목사 (성락성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