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독교 성지 순례] 한국 시민운동 산실… 구국정신 서려
입력 2011-07-10 17:43
(19) 기독교 문화 전파 서울 YMCA회관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에 내리면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의 회색 빌딩이 눈에 띈다. 바로 서울기독교청년회(서울 YMCA) 빌딩이다. 지하 1층 및 지상 8층, 연건평 1만3233㎡(4010평) 규모의 대형 빌딩이지만 호텔과 사무실, 체육관 기능을 중심으로 지었기에 별로 구경거리가 없다. 하지만 YMCA의 설립이념과 정신, Y운동의 활약상 등을 알게 된다면 실로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한국 청년운동과 기독교 문화의 산실로 불리는 이 단체를 지난 8일 찾았다.
◇양반 전도 위해 YMCA 창립
120여년 전, 한 양반 자제가 언더우드 선교사를 찾아 왔다.
“예수교에 대해 배우고 싶은데 차마 상놈이 다니는 교회에 나갈 수 없으니….”
“교회는 신분 차별이 없는 곳입니다.”
한국교회 선교 초기, 교회 안에서 양반은 소수였다. 양반은 교회 뒷문으로 들어와 언더우드의 설교를 들었다. 만약 하인과 마주치는 날이면 체면은 여지없이 구겨진다. 교회에 나가는 것도 문제지만 그것보다 하인과 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조선의 신분제도가 주된 이유였다. 언더우드는 이 일을 통해 교회 이외에 양반의 자제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한국인들도 가졌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마땅히 모여서 새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장소가 드물었다. 그들이 가는 곳은 남의 집 사랑방. 하는 일이란 기껏 화류계의 여자들을 쫓아다니는 것이었다. 개화를 열망하는 한국의 지성인과 젊은이들이 친교를 하고 건전한 오락이나 체육, 새로운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다. 그런 의도에서 시작한 것이 1903년 창립된 황성기독교청년회(오늘의 서울YMCA)다.
서울YMCA 회관은 미국의 ‘백화점왕’ 워너메이커의 4만 달러 기부에 힘입어 1908년 2층 벽돌 양옥, 약 1980㎡(600평) 규모로 완공됐다. 하지만 6·25 전쟁으로 전소돼 58년에 북미YMCA 국제위원회의 50만 달러 원조를 받아 67년 재건됐다.
◇Y운동, 민족운동의 산실
YMCA운동은 우리나라 근대화의 불씨였다. 선교 활동 외에 목공, 칠공 등 실용적인 기술교육과 축구 야구 등 운동경기를 보급한 것도 이곳이다. 육체보다는 정신을 숭상하던 유학의 틀을 벗어나 체육사업을 통해 정신의 건강성을 실현하는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것이다.
민족사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1905년 을사조약 체결 후 이승만, 이준, 안창호, 윤치호, 김규식 등 많은 애국지사들이 YMCA를 중심으로 개화와 구국운동을 전개했다.
일제시대 일본 도쿄의 한국 YMCA 회관에서 거행된 2·8 독립선언을 비밀리에 조직한 것이 YMCA 지도부였고, 3·1 독립만세운동의 대표 33인 중 9인이 YMCA 인사였다. 또 105인 사건 등으로 일제가 서울YMCA를 끊임없이 탄압했지만 학관 교육과 농촌운동, 물산장려운동, 사회체육의 확산 등을 통해 인재를 양성함으로써 독립의 기초를 다진 것은 민족사의 큰 족적이다. 현재 서울을 위시해 전국에 60여 조직과 재일한국 YMCA가 있다.
◇세계 Y운동의 역사
YMCA는 1844년 6월 영국 런던에서 22세의 청년 조지 윌리엄스를 비롯한 12명의 청년들이 일으킨 운동이다. 당시 산업혁명 직후 혼란한 사회 속에서 청소년의 영적, 정신적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친교 모임을 만든 것이 시초다. 이 운동은 급속히 구미 각국으로 확산돼 1855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YMCA 세계연맹이 결성됐다.
150여년이 지난 지금, YMCA는 전 세계 125개국에 1만4500여곳의 조직과 4500만명이 넘는 회원, 100만명이 넘는 자원지도자와 3만여명의 전문사역자를 가진 세계 최대의 청년운동단체로 발전했다.
◇전환기 맞은 YMCA, 새 각오로
올해 108주년을 맞은 한국 YMCA는 전환기를 맞고 있다. 선배들의 찬연한 성과를 계승하기 위해 총체적 부흥운동을 ‘리듬 프로젝트(Rhythm Project)’로 명명하고, Y운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리듬은 ‘조화로운 운동을 향한 YMCA(Re-Habilitation YMCA To Harmonious Movement)’의 이니셜을 조합한 것이다. 서울YMCA는 다양한 프로그램 및 사업 개발을 위한 아이디어 뱅크로서 신문화창조기획단을 최근 설립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YMCA 조직문화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회문화를 대립과 갈등으로부터 화합과 협력을 이끌어 내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서울YMCA 안창원 회장은 “YMCA는 이제 창립 2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Y운동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다”며 “YMCA 회원은 물론 한국교회와 모든 시민이 힘을 모아 건강한 사회 구현에 앞장서 주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글·사진=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