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의혹 밝혀준다더니… 조사관 말 다 거짓” 분노에 가득찬 유족들

입력 2011-07-08 21:15

“내 자식처럼 모든 걸 밝혀준다더니…. 그저 원통하고 분합니다.”

K이병의 장례를 치른 유족들은 여전히 충격에 빠져 있었다. ‘나도 아들이 있는 아버지다’는 조사관의 말만 믿고 장례까지 치렀지만 돌아온 건 ‘해병대와 국가에 대한 배신감’뿐이었다.

K이병의 고모부 조모(57)씨는 “해병대 측이 모든 장례 절차는 군에서만 관여할 수 있으며 유족들이 부검을 반대해도 강제로 부검할 수 있다며 서둘러 부검까지 마쳤다”고 주장했다.

유족들은 장례식 날 해병대로부터 ‘부대원 일동’이라며 300만원의 조의금을 전달받았다. 당시 유족들은 끝까지 K이병을 챙겨주는 부대원들의 마음이 고마워 50만원을 돌려줬다고 한다. K이병과 함께 생활했던 부대원들에게 전해 달라는 뜻이었다.

유족들은 “구타나 가혹행위를 몰랐을 때는 그래도 이렇게 챙겨주는 부대원들이 그저 고맙기만 했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든 행동이 다 거짓이고 은폐였다”고 울분을 토했다.

K이병은 어릴 적부터 테니스 ‘신동’이었다. 초등학교 때 시작한 테니스 실력은 고교시절에는 전국 랭킹 1위가 될 정도였다.

각종 우승컵을 석권했고 대학도 테니스 특기생으로 입학했다. 군대에서 보직도 테니스병이었다. 전역 후에는 국가대표로 뛸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그가 해병대를 지원한 건 사촌형을 비롯해 친한 친구 대부분이 해병대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당당한 해병이 된 걸 한때나마 보람으로 여겼던 것이다.

K이병의 친구 C씨는 “외박을 나온다는 소리에 그날 동네 친구 10명 정도가 얼굴을 보기 위해 모였다”며 “조금 힘들다면서도 남자니까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해 그러려니 했다”고 전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뭔가 친구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챈 C씨가 “한잔 더 하자”고 붙잡았다. 이미 취한 K이병은 갑자기 집으로 달려갔다. “어머니를 지금 만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C씨가 본 친구의 살아있는 모습은 그게 마지막이었다.

K이병의 누나는 “그리 해병대 가게 된 걸 자랑스러워하던 동생이 이리 허망하게 세상을 등질 줄 몰랐다”며 흐느꼈다. 그의 부모는 아직도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몸져 누워 있다. 쿠키뉴스 이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