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맹경환] IT업계에 인문학 바람이 분다는데

입력 2011-07-08 17:30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2005년 6월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졸업생 대상으로 한 연설은 아직도 회자되는 명연설이다. 이 자리에서 잡스는 리드대학을 중퇴하고서도 서체학 강의를 훔쳐 들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서체학이) 아름답고 역사가 있고 예술적으로 오묘해서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훔쳐 배운 그 서체학은 잡스가 매킨토시 컴퓨터를 설계할 때 활용됐다.

잡스의 인문학 예찬론은 자주 등장한다. 지난해 6월 아이폰4를 발표할 때는 “애플을 애플답게 하는 것은 기술과 인문학의 결합”이라고 했다. 올해 3월 아이패드2를 공개할 때에도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기술과 인문학, 그리고 사람이 합쳐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소크라테스와 점심을 함께할 수 있다면 애플이 가진 모든 기술을 내놓겠다”고도 했다.

페이스북의 마크 주커버그는 어릴 적 고전소설, 특히 그리스 로마 신화를 즐겨 읽은 것으로 유명하다. 고등학교 시절 만들었던 컴퓨터 게임의 배경은 카이사르가 등장하는 고대 로마였다. 페이스북이 정보기술(IT)업계를 뒤흔드는 것도 바로 주커버그의 인문학적 DNA 덕분이다.

최근 인문학은 글로벌 IT기업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지난해 인텔은 인간의 근본적인 속성에 대한 연구를 강화하기 위해 ‘상호작용·경험 연구소’를 설립했다. 연구소장인 제네비브 벨은 문화인류학 박사이고, 40여명의 인문학자를 거느리고 있다. 최근 구글은 올해 채용 예정인 6000명 중 4000∼5000명을 인문분야 전공자로 뽑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엔지니어 중심의 구글 기업 문화에 염증을 느낀 이탈자들이 속출하는 상황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다.

우리 사회와 기업에서도 인문학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 대학에서는 학과 통폐합 1순위가 인문학이다. 특히 인문학의 근본인 철학은 고사 위기다.

미국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10년 만에 최근 귀국한 대학 동기는 “지방 사립대학은 과 자체가 없어진 경우가 많고 국립대마저도 정년퇴임한 교수의 자리를 채우지 않는 방법으로 고사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친구의 한탄과 고민이 언제쯤 사라질까.

맹경환 차장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