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시인이면 영원한 시인이다… 첫 시집 ‘방독면’ 조인호

입력 2011-07-08 17:41


1980년대 생인 한국문단의 뉴 키즈. 두 청년이 각각 첫 시집과 첫 소설을 냈다. 둘은 대학졸업 후 짧지 않은 백수생활을 했다. 그 경험은 그들에게 일종의 축복이었다. 한 사람은 문학적 좌표를 발견했고 한 사람은 그 경험을 소설로 썼다. 펜 끝이 촉촉하게 살아있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최종병기시인훈련소(最終兵器詩人訓鍊所)’라는 게 있다. 병기고 안에는 탄약과 포탄 대신 시집이 빼곡히 꽂혀 있다. 훈련소 제 1항엔 ‘시인은 인간 최후의 병기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웬 시인군단? 1981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2006년 계간 ‘문학동네’로 등단한 조인호(30) 시인의 첫 시집 ‘방독면’(문학동네)에 수록된 시 ‘최종병기시인훈련소’ 얘기다.

“최종병기시인훈련소에 들어서면 우선 ‘악’이라는 개 짖는 듯한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올 것이다. 최종병기시인훈련소에서는 ‘악’ 외에 다른 말은 없다. 그곳에서는 ‘네’도 ‘악’, ‘사랑해요’도 ‘악’, ‘배고파요’도 ‘악’이다. 한마디로, ‘악’ 한마디로 모든 의사소통을 꿈꾸는 시인공화국이다.”(‘최종병기시인훈련소’ 일부)

훈련소의 최종 목표는 최종병기시인을 배출하는 것이며 최종병기시인의 최종 목표는 핵이다. 시는 이렇게 이어진다. “핵폭발로 피어나는 거대한 버섯구름을 최종병기시인은 ‘웃음버섯’으로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웃음버섯’이란 환각버섯의 일종으로 먹으면 신경을 자극하여 웃음이 나오는 증상이 나타난다. 위험성은 없다.”

이 시는 훈련소의 병영일지까지 밀어붙인 뒤에야 마침표를 찍는다. “[병영일지, 2005년 6월19일] 최전방감시초소에 땅거미가 진다.-불가사리, 그것은 거대한 생명체처럼 땅 끝을 기어가고 있었다.-이윽고 밤이 깊어진다. 나는 당직완장을 한쪽 팔에 차고 근무자를 깨우러 간다. 불 꺼진 내무실에서 소대원들이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입을 벌린 채 조용히 잠들어 있다.”

사실 훈련소에 입교해 훈련을 받고 있는 시인은 조인호 혼자뿐이다. 그러니까 그 자신이 훈련소를 창립한 장본인이자 훈련조교이다. 말을 바꾸면 최종병기시인훈련소란 자신만의 계파나 리그를 만들어 패거리 문학을 하는 요즘 문단 풍토에 대한 반대급부의 산물인 것이다.

조인호는 해병대 출신이다. 그래서 해병의 구호에서 따온 ‘한번 시인이면 영원한 시인이다’가 그가 내세우는 문학적 모토이자 긍지이다.

시집에는 철가면, 오함마, 불발탄, 우라늄, 다이너마이트, 총과 같은 군대 용어 내지 무기를 연상시키는 시어와 이미지로 가득 차 있다. 그것들은 철(鐵)이라는 하나의 이미지로 모아진다. 예컨대 송전탑에서 철근들은 금속성의 동물 울음소리를 내며 뒤틀리고 있고 비가 내려도 고압전류 같은 쩌릿쩌릿한 비가 내린다.(‘철가면’)

실제로 그는 유약한 감수성이 넘쳐나는 우리 시단에 해병대처럼 강하고 단단한 시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참혹하고 그 어떤 동정심도 없는 세상 속에서 더 이상 시인이란 나에겐 없었다. 그러므로 세상에 시란 존재하지 않는 어떤 불가능이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 시를 쓰는 것은 오직 강해지기 위해서였다.”(‘시인의 말’)

그는 추계예대 문창과 졸업 후 1년 간 취업을 못하고 백수로 살면서 문득 자신의 처지에 대한 원인을 따져보았다고 한다. 그 결과 그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둘러싼, 신자유주의와 남북분단 등이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동료 시인 신동옥이 시집 해설을 쓰기 위해 그를 만나 “시를 쓸 때 가장 주의 깊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시를 쓸 때 저는 두 사람을 염두에 둡니다. 여자친구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씨.”

‘핏’하고 웃음이 새어나오다가 다음 순간, ‘딱’ 멈추게 된다. 그는 여자친구라는 미시 담론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라는 거대 담론 사이를 왕복하는 범상치 않은 스케일을 시에 담고 싶은 것이다. 이런 시적 전술 역시 해병대 체험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는 분단과 북방한계선과 군복무와 실업이 낳은 우리 시단의 아방가르드임에 틀림없다. 그의 시는 철조망에 걸린 채 녹물을 흘리는 강철로 된 장미이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