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토크-드니 빌뇌브 감독의 ‘그을린 사랑’] 찢기고 그을린 전쟁터의 삶

입력 2011-07-08 17:34


“여러분, 영화를 보고 나니 피곤하지 않으세요? 오늘 있었던 모든 일들이 하찮게 생각되거나 만사를 제치고 곧바로 집으로 들어가 잠을 자고 싶지 않으신가요?”

지난 5일 저녁 서울 구로5동 CGV구로에서 열린 영화 ‘그을린 사랑’의 시네마토크 행사장. 행사 진행을 맡은 영화평론가 이동진(43)씨는 시사회 뒤 관객들과의 대화를 시작하며 첫 인사를 이렇게 시작했다. 영화의 충격과 감동이 강렬하고 묵직해 뜨거워진 가슴과 머리를 식힐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뜻에서 건넨 말이었다. 이씨는 “올 초 이 영화를 처음으로 보고 저도 이런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며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강렬함과 감동이 끓어오르는 영화”라고 소개했다.

오는 21일 국내 개봉하는 ‘그을린 사랑’은 미려한 화면 연출과 신선한 스토리텔링으로 ‘캐나다의 박찬욱’으로 불리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4번째 장편이다. 레바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상상하기 힘든 고통을 겪는 한 여성의 모습을 통해 전쟁의 잔인함과 폭력성이 개인과 그 자녀의 삶에 얼마나 큰 고통을 남기는지, 또 그들이 어떻게 이를 극복하는지를 보여준다.

영화는 쌍둥이 남매인 잔느와 시몽이 어머니 마르완 나왈의 유언을 전해 듣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유언장에는 지금까지 죽은 줄로만 알았던 부친과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형제를 찾아 자신의 편지를 전하고, 편지를 전하기 전까지 자신의 장례를 치르지 말라는 당부가 적혀 있었다.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중동으로 떠난 남매는 그동안 베일에 가려있던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이씨는 빌뇌브 감독의 ‘그을린 사랑’이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와 비교했을 때 소재나 장르, 주제가 전혀 다른데도 일맥상통하는 면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 영화팬들은 ‘그을린 사랑’의 몇몇 유려한 장면에서 ‘올드보이’의 장도리 격투신 같은 스타일을 떠올리는 것 같아요. 또 ‘그을린 사랑’의 가장 충격적이고 중요한 모티브 역시 ‘올드보이’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점을 놓고 빌뇌브 감독에게서 박 감독의 모습을 발견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곳곳에 숨겨진 중요한 상징들에 대해서도 이씨의 설명이 이어졌다. 예를 들어 나왈이 전쟁 이후 공증인 사무실에서 일한 설정에서 역사를 증언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이씨는 “알베르 카뮈가 ‘삶에는 살아야 할 때가 있고 증언해야 할 때가 있다’고 한 것처럼 이 영화는 역사를 있는 그대로 전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진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다”며

“이런 이야기를 공증인이라는 설정을 통해 효과적으로 선보이면서 영화가 보다 입체적이고 풍성해졌다”고 분석했다. 이씨는 또 고정카메라나 핸드 헬드 촬영 등 다양한 카메라 기법을 구사하며 시각적 쾌감을 극대화시킨 점과 영국 밴드 라디오헤드의 반전 메시지를 담은 노래 등이 사용된 점 등이 영화를 돋보이게 했다고 호평했다. 그는 아울러 영화가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을 다루면서도 절묘하게 균형을 잡으면서 수작이 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사실 ‘그을린 사랑’은 완벽한 영화가 아닙니다. 우연이 겹치고 이야기가 자의적인 측면이 있죠. 그렇다고 하더라도 올해 아카데미가 ‘그을린 사랑’에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주지 않은 것은 유감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영화를 외면하다니요.”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