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기독교 윤리란 무엇인가
입력 2011-07-08 17:55
주님의 청지기로 세상을 경영할 책임
경제란 인간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 분배, 소비하는 개념과 행위 일체를 일컫는다. 이러한 경제 역시 인간의 활동이므로 반드시 윤리적 숙고가 필요하다. 제반 경제활동과 관련된 윤리적 판단 기준과 행동 준칙을 세우는 것이 경제윤리가 해야 할 과제다.
현대경제학의 아버지 폴 사무엘슨은 무엇보다 생산 측면에서 무엇을, 얼마만큼, 어떻게, 누구를 위해 생산하는지 여부의 윤리적 문제를 고찰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돈을 벌기 위해 마약이나 유해식품을 생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인간의 과소비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무한정 재화나 용역을 생산할 수도 없다. 생산비용을 줄이기 위해 무분별한 비정규직 양산이나 아동 노동을 획책해서는 안 된다. 기업가나 자본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생산 방식이나 체제는 부당하기 짝이 없다.
분배 차원에서 윤리적 문제는 사회정의와 직결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적 몫에 대한 올바른 배분 실현은 ‘분배적 정의’로 정식화될 수 있다. 분배는 생산요소(자본, 노동, 토지)의 기능에 맞춰 적절해야만 비로소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즉 고용주와 노동자의 몫이 골고루 배분되어야 한다. 만일 분배의 불평등이 합리화되고 정당화되는 구조로 되어 간다면 경제의 다른 주체인 국가의 조정과 개입이 적극적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 국가는 기업의 독점 이윤을 제한하고, 증세를 통한 사회자금을 확충하며, ‘보정적 정의’에 입각한 사회정책 및 사회보장제도를 시행해야 한다. 이것이 존 롤스가 말하는 최저소득계층의 실질적 소득수준 향상을 목표로 하는 경제적 사회정의론의 골자다.
소비 차원에서 말하는 윤리 문제 역시 정의와 무관하지 않다. 고용 불안, 실업, 빈곤, 주택, 교육의 문제는 생산영역에서 주어지는 임금의 불평등한 분배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불평등한 재생산을 막기 위해선 일자리 제공, 안정적 주택 보급, 의료혜택과 교육기회 균등 등이 이뤄져야 한다. 공공기금을 통해 집합적 소비수단인 공원, 여가시설, 유아원, 탁아소 등도 확충돼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윤리적 소비는 생태계 안정과 피조물 전체와의 공생까지 고려한다. 인간의 무분별한 소비로 인한 생태계 파괴는 미래 후손의 생존 기반을 무너뜨릴 수 있다.
기독교 경제윤리의 출발점은 청지기 신앙 행위와 자세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세상을 관리하고 경영할 책임, 즉 생산, 분배, 소비를 관여할 경제적 책임이 있다. 경제(economy)를 뜻하는 고대 헬라어 오이코노미아는 집(oikos)과 관리(nomos)의 합성어인데, 곧 살림살이를 뜻한다. 여기서 살림을 꾸려나가는 청지기(oikonomos, governor) 사상이 유래한다. 하나님의 청지기는 기업가든, 노동자든, 국가 공직자든, 가계 일원이든 각자 맡겨진 영역에서 경제활동을 책임 있게 수행해야 한다.
사도 베드로는 오늘을 사는 기독인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10). 사도 바울 역시 도둑질하지 말고,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벌이를 하고,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강력히 권고한다(엡 4:28).
강병오 서울신학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