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건강한 여행

입력 2011-07-07 18:01

40∼50년 전 개발연대 초기에 재건 데이트라는 게 있었다. 당시의 시대적 요청인 ‘국가재건’이란 말에서 따왔으나 내용인즉슨 넉넉하지 않은 주머니 사정을 반영한 것이다. 데이트라고 해봐야 길을 걸으면서 얘기도 나누고 출출하면 주변의 허름한 밥집에서 요기를 하는 게 고작이었다.

다리만 멀쩡하면 주머니가 가벼워도 무궁무진 대화가 이어지는 그런 데이트가 요즘 모습을 약간 달리 해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제주도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서울 성곽길 등 걷기 순례에 초점을 맞춘 여행이다. 이것은 패키지여행을 포함한 기존의 여행과 많이 다르다.

보통 우리네 여행은 몇몇 유명 관광지만 콕 찍어 방문해 인증샷을 만들고 바람처럼 다음 곳으로 이동하는 등 매우 공세적이다. 반면 걷기 순례는 여행지 전체를 제 발로 걷고 그곳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느릿느릿 현장을 체험한다. 여기에는 그간의 여행행태에 대한 반성도 포함됐을 터다.

여행행태에 대한 비판은 1990년대 서구에서 ‘공정여행(fair travel)’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돼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논의가 한창이다. 공정여행은 생산자와 소비자가 대등한 관계를 맺자는 공정무역에서처럼 여행자와 여행 현지(국내외)의 주민들 모두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예컨대 며칠 전 EBS TV는 ‘우리의 여행이 말하지 않는 것들’(2부작)이란 다큐멘터리를 통해 저개발국가 관광산업 이면에 있는 현지인들의 아픔과 상처를 다뤘다. 프로그램은 “내가 편해지는 대신 현지인이 불편해지는 여행, 나는 얻지만 그들은 빼앗기는 여행에서 벗어나자”고 제안한다. 그건 바로 현지 밀착형 여행이다. 일일이 걸으면서 그곳에서 수확한 것을 먹고, 우리는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에겐 경제적으로 직접 도움이 되는 여행이다.

하지만 공정여행을 지나치게 이상형으로 그리고 있다. 현지 정보에 어두울수록 여행은 보통 여행상품(패키지여행)에 의존하기 마련인데 여행상품에 대한 지적은 전혀 없다. 작금의 불공정여행은 덤핑관광 등 매출만을 중시하는 여행사의 여행상품에 보다 본질적인 원인이 있지 않은가.

여행객들의 각성은 물론 필요하다. 그렇다고 여행객의 행태를 공정, 불공정으로 따지는 게 과연 타당할까. 차라리 에코 여행, 지속가능한 여행이라고 명명하고 이를 지향하는 게 더 좋겠다. 아니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숙성시킨다는 뜻의 ‘건강한 여행’은 어떨까. 올 여름휴가철,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