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Wee센터] “자살충동까지 느끼는 학생 상담을 중단하라니…”
입력 2011-07-07 18:07
경기 지역 학생안전통합시스템(Wee)센터에서 계약직 임상심리사로 일하고 있는 김미영(가명·35·여)씨는 지난달 말 시작한 고등학교 2학년 이모(17)군에 대한 상담을 중단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 Wee센터를 운영하는 지역교육청으로부터 최근 해고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일자리만큼이나 이군의 상담 중단이 걱정된다. 이군은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 학우들로부터 4개월가량 지속적으로 폭행과 따돌림을 당했다. 이군은 학년이 바뀐 뒤에도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이군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지금도 우울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다. 가끔 이유 없이 울기도 하고, 흉기로 손목을 긋는 시늉을 하는 등 자살 충동도 느낀다. 이군과 면담한 학교 담임교사는 결국 지역 Wee센터에 상담치료를 의뢰했다.
김씨는 7일 “이군 같은 경우 적어도 1년 이상 지속적인 상담 치료를 받지 않으면 상황이 악화될 위험이 크다”며 “이런 상황에서 상담을 중단하는 것은 상담사의 직업윤리에도 어긋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센터 측은 김씨에게 “학생 상담이 많이 밀렸으니 일단 상담을 시작한 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정리하라”고 지시했다.
◇상담 현장에서 일어나는 ‘줄해고’=교육과학기술부가 학생 정신건강을 위해 2009년부터 만든 Wee센터에 계약직 상담사 해고가 이어지고 있다. 교과부는 학생 상담을 강화하겠다고 수차례 밝혔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전문 인력을 해고하고 새로운 상담사로 ‘돌려막기’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용인 Wee센터의 경우 전체 직원 7명 중 상담을 맡고 있는 6명이 9월 1일자로 전원 해고 통보를 받았다. 용인센터에서 현재 상담을 받고 있는 학생 100여명은 상담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상담 인력이 부족해 대기 중인 학생도 20명이 넘지만 곧 상담사가 바뀌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상담 시작을 미루고 있는 상태다. 한 상담사는 “위기 학생은 적절한 때 상담이 시작돼야 더 큰 문제를 막을 수 있는데 방치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깝다”며 “상담사들은 다른 직장을 구하면 되지만 상담 중이거나 상담을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돌아갈 피해가 너무 크다”고 말했다.
경기 지역 또 다른 Wee센터도 상담사 9명 중 근무기간이 2년을 채운 3명이 9월 1일자로 교체된다. 센터 관계자는 “상담사가 중간에 해고를 통보받으면 계약 해지일자에 맞춰 상담 스케줄을 조정한다”며 “상담을 빨리 끝내기 위해 1주일에 한 번 하던 상담을 두 번씩 하는 방법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Wee센터 관계자는 “우리도 함께 일하던 사람과 계속 일하고 싶지만 교육지원청에서 법적으로 안 된다고 해서 답답한 입장”이라고 말했다.
상담사가 계속 바뀌면서 피해를 떠안는 것은 위기 학생들이다. 긴 시간을 두고 정기적인 상담치료를 실시해야 하지만 상담사가 바뀌면 상담의 흐름이 끊길 수밖에 없다. 상담치료는 서로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신뢰와 친밀감을 쌓아야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 상담사는 “상담사가 바뀌는 것을 학생들이 원치 않는 경우가 많다”며 “마음에 상처가 있는 아이들은 ‘상담사에게 거부당했다’고 느낄 수 있어 결과적으로 두 번 상처 주는 일이 된다”고 말했다.
◇왜 이런 일 벌어지나=교과부와 일선 센터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결국 예산과 상담교사 법제화 미비가 문제다. 기간제법에 따르면 사업장에서 계약직 직원의 계약을 2년 이상 연장할 경우 정규직이나 무기한 계약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에 따라 시·도교육청에서는 예산 문제로 근무기간 2년을 앞둔 상담사들을 해고하고 새로운 인력을 뽑고 있는 것이다.
교과부는 시·도교육청이 법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기간제법은 ‘사업의 완료 또는 특정한 업무의 완성에 필요한 기간을 정한 경우 2년이 지나도 계약직으로 연장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Wee 프로젝트는 아직 시범사업이기 때문에 기간제 상담사들의 계약을 무기계약으로 연장할 이유도 없다”고 설명했다. 교과부는 당초 올해까지 예정된 시범사업 기간을 늘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교과부 설명에 따르더라도 상담사들의 고용불안 문제는 여전하다. 상담사들의 계약기간이 임시로 연장되는 것일 뿐 여전히 신분이 ‘계약직’이기 때문이다. 고용이 안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줄해고’ 문제는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는 것이다.
Wee 프로젝트는 2009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 시범 실시되는 교과부의 ‘시책 사업’이다. 시범사업이다 보니 예산도 매년 일반교육교부금이 아닌 특별교부금으로 지원돼 안정적인 확보에는 어려움이 있는 상황이다.
대구대 심리학과 이종한 교수는 “상담 인력의 신분 불안정 문제 때문에 전문 인력이 투입되지 않고 있다”며 “지금처럼 시범사업으로 진행된다면 사업이 언제 없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