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나님과 동급, 내게 기도하라" 선임병이 핍박… 해병대 구타 실태
입력 2011-07-08 01:03
국방부 감사관실의 해병대 구타 실태 조사에 따르면, 구타 피해자의 신원이 전 부대에 공개되거나 구타를 신고한 사병은 이후 더 심한 2차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최근 강화도 해병대 총격사건을 일으킨 병사들도 선임병에게 상습적인 구타와 모욕을 당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선임병은 구타, 지휘관은 사건 축소=지난 3월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해 제기된 해병 1사단의 구타와 문제와 관련해 국방부가 실태를 점검한 결과, 이 부대에서는 갖가지 이유로 구타가 행해졌다. 피해 병사들은 ‘선임기수를 못 외운다’ ‘화장실 청소가 불량하다’ 등의 이유로 선임병으로부터 얼굴과 가슴, 대퇴부 등을 수차례 폭행당했다. 일부 병사는 늑골이 부러지기도 했다.
구타사건 처리과정에서는 지휘관에 의한 조직적인 사건 축소 시도와 보복성 폭행이 일어났다. 관련 부대 중대장은 상급부대와 헌병대에 구타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구타로 입원한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어 축소 진술을 강요했다. 부대 행정관들도 피해자에게 ‘고소까지 가지 말고 영창 정도로 끝내자’고 설득하는 등 사건 축소를 종용했다. 일부 피해자는 피해 사실을 지휘관에 알렸다는 이유로 가해자로부터 더 심한 2차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피해자 노출로 2차 피해 우려=인권위 조사를 받은 피해자는 부대 내부에 신분이 완전히 노출돼 추가 피해 가능성이 커졌다. 해병 1사단 감찰실은 인권위 조사가 끝난 직후인 1월 13일 피해자 실명 등 사건내용이 자세히 기록된 보고서를 공개문서로 사단 내 전 부서에 발송했다. 보고서를 접수한 부대에서는 장병들이 공람하게 하거나, 대대 게시판에 보고서를 걸었다.
해병대 사령부의 구타사건에 대한 추후 대처도 안이했다. 인권위 조사 뒤 사령부는 예하부대에 구타 및 가혹행위 등 병영생활 저해요인을 진단해 제도개선 활동을 추진하고 그 결과도 보고토록 지시했다. 그러나 사령부 담당자는 예하부대가 보고한 부대진단 결과를 사령관에게 보고하지도 않았고, 제도개선도 시행하지 않은 것으로 국방부 감사결과 나타났다.
또 해병대는 인권위로부터 구타사건과 관련해 직권조사를 받은 사실을 해군본부와 국방부에 보고하지도 않았다. 해군 감찰규정 제26조는 각 부대장은 외부기관이 검열(감사)을 실시하기 위해 부대에 도착했을 경우 참모총장에게 보고하도록 돼 있지만 이를 무시한 것이다.
◇총격사건 가해자도 가혹행위 당해=이번 인천 강화군 해병대 총격사건을 일으킨 김모 상병과 정모 이병도 부대 내에서 가혹행위에 시달려 왔다고 진술했다. 특히 정 이병은 종교적인 이유로 심한 수모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국방부 수사본부의 조사에 따르면, 모 병장은 정 이병에게 자신을 “하나님과 동급”이라며 “기독교를 왜 믿느냐, 차라리 나에게 기도하라”고 놀렸다. 이 병장이 성경책을 라이터로 태워버린다며 불을 붙여 정 이병이 바로 끈 적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병장은 “○○를 태우겠다”며 정 이병의 전투복 지퍼 부위에 스프레이 살충제를 잔뜩 뿌린 뒤 불을 붙여 정 이병이 황급히 끈 적도 있었다. 또 다른 상병들은 정 이병의 목과 얼굴에 연고형 파스를 바른 뒤 수 시간 동안 씻지 못하도록 했다.
부대원들에게 총격을 가한 김 상병도 “일부 선임에게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말했지만, 구체적인 상황은 밝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