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문지방 넘기] 고난 딛고 성숙해진 욥의 신앙
입력 2011-07-07 17:53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라는 대중가요가 있습니다. 고난을 통해서 성장한다는 뜻이겠지요. 욥은 아픈 만큼 성숙해졌나요? 고난을 겪으면서 그만큼 신앙이 성숙해졌나요? 이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욥기 42장 8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세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욥은 인간이 당할 수 있는 모든 고난을 한꺼번에 받았습니다. 모든 재산을 다 잃고, 열 명의 자식을 잃고, 몸에는 악창이 들었습니다. 이 소문을 듣고 세 친구들이 먼 곳에서 달려옵니다. 처음에는 친구들이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욥의 모습은 처참한 몰골이었습니다. 친구들은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일주일간 땅에 주저앉아 펑펑 울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정신을 수습하고 욥을 위로하기 위해 말문을 열었습니다. 이때 욥의 친구들은 위로자였고, 욥은 친구들로부터 위로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욥기의 결론(42장)을 보면 이들의 입장이 정반대로 달라집니다. 욥이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욥의 친구들에게 욥을 찾아가라고 명령합니다. 욥은 찾아온 친구들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하나님께서는 욥의 기도를 흡족하게 받아들입니다. 전에는 친구들이 욥을 위로했지만 지금은 욥이 친구들을 위로해 주고, 친구들을 위해 기도해 주고, 친구들을 위해 간구하고 있습니다. 위로받던 사람이 위로하는 사람이 되었고, 권고 받던 사람이 권고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확실히 욥은 변모했고, 욥의 신앙은 한 단계 향상되었습니다. 신앙이 성숙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신앙생활을 한 햇수가 많아졌다는 것입니까? 중요한 직분을 맡았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보다는 ‘남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고난 가운데서 신음하는 사람을 넉넉하게 품어줄 수 있는 넓은 가슴을 지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과 논쟁을 하면서 넉넉한 가슴을 품지 못했습니다. 논쟁을 하다 보면 상대방에게서 논리의 모순을 찾아내 공격을 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상대방에게 본의 아니게 상처를 주게 마련입니다. 위로자가 아니라 비판자가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욥의 친구들을 책망했던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욥은 하나님을 직접 뵌 후에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고 남을 위해서 기도하면 남도 복을 받지만 자기 자신도 역시 풍성한 복을 받습니다. 욥이 친구들을 위해 기도한 후에 하나님으로부터 배나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욥 42:19)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신앙의 신비입니다.
예수님 이후에 예수님을 가장 닮았다고 하는 성 프란체스코. 그분이 지은 ‘평화의 기도’를 나지막한 소리로 읊어봅니다.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며 자기를 온전히 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
오종윤 목사 (군산 대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