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불황의 시대, 두 가지 책 이야기] 직원은 전부 정규직 재정·출판 과정 모두 공개 그래도 안 망해요

입력 2011-07-07 18:17


도서출판 ‘후마니타스’와 박상훈 대표

①대출 권하는 사회 ②복지국가 스웨덴 ③인간의 꿈 ④정치의 발견 ⑤대학주식회사 ⑥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 ⑦국민과 서사 ⑧통일 독일의 사회정책과 복지국가 ⑨아담의 오류 ⑩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 ⑪소금꽃나무(한정특별판).

도서출판 후마니타스가 올 상반기 세상에 선보인 책은 이렇게 11권이다. 라틴어로 인문학이란 뜻을 가진 출판사 후마니타스. 제목부터 딱딱한데, 역시나 읽기 쉬운 소설은 한 권도 없다. 주종은 사회과학 논문이며, 조금 쉽다고 해도 학술 에세이다. 그나마 문학성이 가미된 건 노동 현실과 대학 상업화를 고발하는 현장 르포. 2002년 처음 문을 열 때부터 그랬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아파트 공화국’ ‘워킹푸어’ ‘부동산 계급사회’ ‘법률사무소 김앤장’ 등 한국 사회 곳곳을 꿰뚫는 책들을 냈다.

이런 책은 물론 많이 팔리지 않는다. 지난 6개월간 교보문고 영풍문고 예스24 인터파크 등 온·오프라인 빅4 서점 베스트셀러 200위 안에 하나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200위는 사계절 출판사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인데 1290부 팔았다. 반년 동안 고작 1290부를 팔아도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올린다. 1위는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31만4996부. 양극화도 이런 양극화가 없다.

후마니타스 박상훈(47) 대표는 정치학을 전공했다. 서울대 경영학과(83학번)를 졸업했는데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쓴 고려대 최장집 명예교수에게 정치학을 배워 2000년 박사가 됐다. 학위를 받고는 대학에 남지 않고 출판을 택했다. 지난 4일 그를 찾아간 것은 뭘 먹고 사느냐고 묻기 위해서였다. 출판사를 휘어잡던 책도매상(업계에선 ‘총판’이라고 부른다)들이 줄도산하고, 그들에게 책이 물린 밀리언셀러 출판사들 역시 부도가 나기 시작한 시점이다.

-모두들 생존을 걱정하는데 후마니타스가 홈페이지에 올리는 월별 수입·지출 현황을 보면 가끔 흑자도 난다. 근데 이런 장부 공개해도 되는 건가.

“우리는 사회성이 강한 책을 만든다. 좋은 사회에 살자고 하는 거다. 책을 낼 때만 좋은 사회를 말하고, 실제 운영은 그것과 무관하다면 곤란하지 않을까.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살림살이를 보여주는 거다. 재정은 원래 기업의 최고 권력자와 은밀하게 이야기하는 곳인데, 그걸 체크 앤 밸런스 하려면 인건비가 추가로 든다. 사회적 책임감과 기업 내 효율, 두 가지를 위해 공개하는 거다. 우리에겐 가장 합리적 선택이다.”

-직원들 월급은 얼마나 주나.

“출판사 식구는 8명이다. 명목 월급 기준으로 대표인 저는 340만원 가져가고, 주간은 320만원 정도. 편집장과 영업부장은 310만원선. 영업팀원과 편집부원들은 250만원 수준이다. 최고와 최저 임금 격차가 100만원을 넘지 않게.”

불황 탓에 출판업계 연봉은 짜다. 대형 출판사의 대졸 편집자 초임 연봉이 3000만원 수준. 거기에 비하면 구멍가게인 후마니타스는 비교적 높은 임금을 유지하면서도 비정규직을 쓰지 않는다. 비결은 박 대표가 욕심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오히려 주식회사인 출판사 구조를 조합 형태로 바꿔서 출판사 식구뿐 아니라 독자와 필자가 모두 1인1표 경영권을 행사하는 꿈을 꾸고 있다.

그는 책을 통해 돈을 번다기보다 사람을 만나려 한다. 그걸 위해 재정뿐 아니라 필자와 역자에게 책 만드는 과정도 다 공개한다. 책의 본문까지 카피레프트 코너에 과감히 올릴 때도 있다. 박 대표는 “공개는 기본이고, 출판사는 결국 독자들의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후마니타스의 재무 지표를 들여다봤다. 회계법인이 작성한 2010년 국세청 납입본이다. 단기차입금 1억6900만원이 포함된 부채는 3억5780만원인데 현금, 외상매출금, 재고 등 유동자산은 3억1133만원이다. 이 정도면 그럭저럭 굴러간다. 특히 지난해 여름 후마니타스가 이걸 하지만 않았다면 1억원의 부채를 줄일 수도 있었다. 출판사를 카페로 만들기.

후마니타스는 ‘책다방’ 이름이기도 하다. 두 달 남짓 인테리어 공사 끝에 지난해 8월30일 문을 열었다. 서울 홍익대 부근에 있다. 직사각형 공간 중앙에 커피를 만드는 바가 있고 건너편 유리창 안에서 편집부가 책을 만든다. 편집장 안중철(39)씨는 “책상에서 잠깐 졸다 깰 수도 있는데, 그때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던 손님과 눈이 마주치면 조금 뻘쭘하다”고 했다. 직원들에겐 주5일 48시간 노동에 연차 15일 이상을 보장한다. 근로기준법에 적힌 ‘직원 50명 이상 사업장’ 기준을 적용한다.

대표실, 주간실, 영업부실은 한쪽 구석에 있는데 평일 밤과 주말 종일은 세미나 공간으로 변신한다. 6일 저녁 영업부실에서 박상훈 대표는 젊은이 10여 명과 함께 르네상스 시대 정치학자 마키아벨리를 읽고 있었다. 쉬는 시간에 이 강독회에 참여한 홍지웅(32)씨와 얘기를 나눴다. 홍씨는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대학원 박사과정 1학기에 있다. 지난해까지 4년간 국회의원 비서로 일했다고 했다.

“근처에 북카페는 많아요. 그런데 여기는 말 그대로 북을 함께 만들어가는 북카페예요. 후마니타스의 다음 책이 마키아벨리 해제라고 합니다. 오늘이 첫 마키아벨리 강독회인데 왜 지금 한국 사회에서 그를 봐야 하는지 얘기하고 있죠.”

세미나 공간을 빌려준다고 돈을 더 받지는 않는다. 하루 전 예약하고 커피 값만 내면 된다(다 마시면 리필도 해준다). 저녁 8시 이후에 오면 1000원을 깎아준다. 이러고도 후마니타스 책다방은 출범 3개월 만에 자체 수입과 지출을 맞췄다. 바리스타 4년 경력의 카페 매니저 황영호(27)씨에게 메뉴를 추천해 달라고 했다.

“샤케라또. 샤케는 이탈리아어로 흔든다는 뜻입니다. 에스프레소를 거품 내는 건데 이러면 향이 잘 날아가지 않아요. 저희는 셰이크 메뉴가 많아요. 한 번 앉으면 서너 시간 읽고 또 쓰는 손님이 많아서 얼음이 잘 녹지 않도록 하는 거죠. 주 5일 출근도장 찍는 분도 꽤 많아요.”

1억원을 들여 굳이 책다방으로 변신한 이유를 박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출판사와 사회, 그 사이의 중첩되는 좀 두툼한 공간을 갖고 싶었죠. 오래된 생각이에요. 독자도 만나고 저자도 만나고 기획자도 만나고. 아이디어 내는 사람들하고 자유롭게 만나자는 거죠.”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는 후마니타스 책다방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인 서울 서교동에 있다. 한기호(53) 소장은 지난 2일 44세로 타계한 고(故) 최성일 출판평론가의 792쪽 유작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우리 시대 사상가 218인의 생각사전’의 추가 인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한 소장은 바빠서 후마니타스 책다방을 아직 가보지 못했다면서도 일면식 없는 박 대표의 생각을 정확히 읽고 있었다.

-후마니타스 재정 상태가 이렇다. 지속가능할까.

“그 정도면 굴러간다. 우리 연구소도 마찬가지 수준이다.”

-그들은 왜 모든 걸 공개하고 또 카페를 연 것일까.

“‘도시의 승리’란 책이 있다. 도시의 강점은 사람들이 서로 만나 이야기하면서 아이디어를 생성할 수 있다는 게 주제다. 아무리 SNS로 무장한 네트사회라도 온라인만이 아니라는 거다. 오프라인에서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하고 그게 매개가 되면 신뢰가 생긴다.”

-책은 어떤가.

“자기 방향성이 있고 자기 브랜드가 있다. 이미 백화점이 있는데, 백화점 밑에서 잡화점 하면 장사가 되겠나. 신생 출판사들은 다 잡화점 하려고 한다. 백화점에 가도 없는 거, 당연히 잡화점에도 없는 거. 그거를 전문점에서 하는 거다. 후마니타스가 추구하는 전문점으로 하면 길이 열리는 거다.”

박 대표가 건축가라면, 한 소장은 현장소장 스타일이다. 출판을 바라보는 둘의 결론은 같다. 출판사가 오프라인으로 나와서 독자와 만나며,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