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불황의 시대, 두 가지 책 이야기] 한 번에 여러 권 사서 기분에 맞는 책 골라 질문하며 읽으세요
입력 2011-07-07 18:17
영어스터디 카페 ‘이투피플’ 김진호 대표
①콜드 리딩(Cold Reading) ②블링크: 첫 2초의 힘 ③이건희의 서재 ④수만 가지 책 100% 활용법 ⑤세상의 벽 하나를 빌리다 ⑥하악하악 ⑦쇼펜하우어 문장론… (25)축하해 (26)안씨가훈.
이렇게 26권의 책을 김진호(35)씨는 6월 한 달간 읽었다. 5월에는 ‘논어’ ‘클라우드혁명’ 등 23권을 읽었고, 4월엔 ‘웰니스: 뇌를 바꾸는 운동 혁명’으로 시작해 27권을 독파했다. 3월 24권, 2월 23권. 이런저런 업무가 많았던 1월만 14권에 그쳤다. 그는 지금 1년에 365권, 그러니까 매일 한 권씩 읽기에 도전하는 중이다. 상반기에만 137권을 읽었는데, 목표량에 못 미쳐 좀 더 분발하려 한다.
그는 사업을 하고 있다. 영어회화 익히려는 사람들에게 스터디그룹 꾸려주고 학습프로그램 제공하는 ‘이투피플’을 2007년 창업했다. 온라인 회원 2만4000여명. 요즘 월 매출은 600만원쯤 된다. 서울 역삼동에 영어스터디 전용 카페도 차려서 매일 오전 9시30분 여기로 출근한다. 점심 먹으러 갈 때까지 매일 3시간 동안 하는 일? 책을 읽는 것이다.
삼성에 사표 던지게 해준 책
어려서 읽은 책 중 기억에 남는 건 주로 교과서다. 한양대 재료공학과에 다닌 대학 시절에도 강의 교재 외엔 읽은 기억이 별로 없다. 도서관에서 책 뽑아들고 끝까지 읽어내는 친구들을 보면 부러웠다. 그런 그를,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게 해준 건 삼성이었다.
2004년 1월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입사해 금속재료 파트에서 일했는데, 너무 재미가 없었다고 한다. 6개월쯤 지나자 ‘로봇이 돼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스트레스 안고 사는 선배들을 보면 5년, 10년 뒤 내 모습이 그려졌다.
“다른 일을 하고 싶었는데, 남들이 다 좋다는 직장을 나가려니 무서웠어요. 뭘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사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보기 시작했어요. 일주일에 3권씩. 책 속에 길이 있다니까.”
아침 8시 출근해 밤 10시 퇴근하면서 책 읽는 시간을 내기란 쉽지 않다.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었다. 매일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책을 읽었다. 주식투자 열풍이 불던 때여서 재테크 서적도 읽었고, 진로 설정을 도와준다는 자기계발서를 탐독했고, 무엇보다 사람들에 관한 책에 매달렸다. 성공한 이들의 경험담에서 길을 찾으려 했는데, 그런 책에는 실패했던 이야기가 훨씬 많았다. 실패담을 반복해 읽다보니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더라고 했다.
“2년 동안 매주 3권씩 300권쯤 읽었어요. 사표 낼 용기를 준 건 스타벅스 창업자 하워드 슐츠의 책이었던 것 같아요. ‘스타벅스 커피 한 잔에 담긴 성공신화.’ 원서까지 구해서 읽었죠. 그 사람도 정말 실패 많이 했더라고요.”
이렇게 책에 빠지기 전에 대학시절부터 빠져 있던 것은 영어공부다. 미국에서 10개월 어학연수를 했는데 오히려 한국말이 더 ‘능통해져’ 돌아왔다고 한다. 한국인이 너무 많은 학교였다. 연수에 쓴 돈이 아까워서 영어회화 스터디그룹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대학 4학년 때는 일주일에 10개쯤 공부모임 만들어 매일 영어로 말을 했다. 6개월쯤 반복하니 영어가 되더란다.
삼성 다닐 때도 주말을 이용해 스터디그룹 4개를 ‘운영’하고 있었다. 하루는 후배가 “형, 이거 사업해도 되겠다” 하는 말을 툭 던졌다. 직장인 중에 이런 말 한번쯤 들어보지 않은 사람 없을 것이다. 이런 말 듣고 진짜 그 사업에 뛰어든 사람, 별로 없을 것이다. 김씨는 2006년 6월 사표를 냈고, 1년쯤 준비해서 이듬해 만든 회사가 이투피플이다.
아내를 만나게 해준 책
책도 뭔가 절박해야 손이 가는 걸까. 잠 안 자고 읽던 책인데, 회사 나와서 시간 많아진 1년간은 한 달에 한두 권 읽을까 말까 했다. 다시 책을 잡게 해준 건 우연히 읽은 책이 마음에 들어 이투피플 회원들에게 “한번 읽어보시라” 하며 써 보낸 ‘독후감’이었다. “글 잘 봤다”는 반응이 의외로 많이 왔다. 회원과의 소통, 벌여놓은 사업을 위해서라도 다시 책을 읽어야 했다.
요즘은 오전 5시 반에 일어난다. 씻고 나서 2시간 정도 글을 쓴다. 독후감을 쓰기도 하고 사업 아이디어도 정리하고. 오전 9시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림역에서 열차에 오르면 역삼역까지 20분가량 책을 읽는다. 매일 빼먹지 않고 읽을 수 있는 이 시간에 펼쳐드는 책은 성경이다.
오전 9시30분 이투피플 카페에 도착하면 미리 사서 책꽂이에 꽂아둔 책들 중 하나를 꺼내 읽는다. 속독(速讀)은 아닌데 일단 책을 펴면 집중하는 속도가 무척 빠른 편이다. 300쪽 미만이고 비교적 가벼운 내용이면 오전 중에 한 권을 끝낼 수 있다. 오후엔 일을 하고 저녁엔 카페로 찾아오는 회원들을 상대하고 밤 10시에 ‘내일 읽을 책’을 골라놓고 퇴근한다. 그를 만난 것은 지난 5일이었다.
-오늘은 무슨 책을 읽었나요.
“조지 뮬러의 ‘먼저 기도하라’. 요즘 기도가 부족한 것 같아서….(웃음) 출근길엔 성경을 읽었는데 역삼역에서 못 내리고 삼성역까지 갔다가 돌아왔어요. 지하철은 책 읽기에 정말 좋은 공간이라서 가끔 그래요.”
-책값이 많이 들겠어요.
“한 달에 30만원 정도. 주로 인터넷서점에서 주문해요. 조금 싸고 배달까지 해주니까. 그래도 매주 두세 번은 서점투어를 가요. 마침 신림역에 대형서점이 있어서 새로 나온 책, 추천 받은 책, 내가 읽은 책에 소개된 다른 책들을 사기 전에 미리 살펴보죠. 요즘은 책의 수명이 짧아졌어요. 좋은 책도 금방 묻히고 절판되는 경우가 많아서 괜찮다 싶은 책은 빨리 사야 돼요.”
-왜 그렇게 책을 많이 읽나요.
“책 읽다가 사표 낸 뒤로 뭐든 시작할 땐 관련 책을 읽는 게 습관이 됐어요. 트위터 시작할 때도 사용법 책을 대여섯 권 읽고 그대로 했더니 6개월 만에 팔로어가 1만명이 넘었어요. 블로그 할 때는 블로그에 관한 책, 아이 낳고는 육아에 관한 책을 10권쯤 읽었어요. 아내를 만나게 해준 것도 책이었고요. 영어공부 하면서 배운 건데, 영어는 외우는 게 아니라 반복해서 훈련해야 내것이 되더라고요. 책이 주는 지식, 지혜, 깨달음 뭐 그런 것도 반복해서 자극을 받아야 체화되는 것 같아요.”
-아내를 만나게 해준 책이라뇨?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12가지 성공법칙’이란 책을 읽었는데, 만나고 싶은 배우자 모습을 노트에 적어보라는 대목이 있었어요. A4 용지에 죽 써봤죠. 성격이 밝으면 좋겠다, 유머러스하면 좋겠다 등등. 원룸에 살 때였는데 그걸 벽에 붙여놨더니 아침저녁 읽게 되더군요. 원래 알고 지내던 여자후배가 있었는데, 전에는 별 관심을 갖지 못했던 그 후배가 제 희망사항에 딱 맞는 여자란 생각이 어느 날 갑자기 드는 거예요. 재작년에 결혼했어요.”
2004년 6월부터 지금까지 1000권쯤 읽으며 여러 독서법을 실험했다. 집에 TV를 없애기도 했고, 요일별 ‘독서계획표’도 만들어봤고, ‘15분 독서법’도 고안했다. 지하철에서 10∼20분씩 읽을 때 집중이 잘되는 데서 착안해, 알람시계 맞춰놓고 15분마다 다른 책으로 바꿔가며 읽는 방법이다.
이것저것 해봤는데 제일 좋은 건 ‘질문하며 읽기’와 ‘한꺼번에 여러 권 사기’라고 한다. 저자는 왜 이런 말을 할까, 생각하며 책장을 넘기면 집중하기 쉽고,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읽고 싶어지는 책이 항상 곁에 있도록 미리 사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딜리버링 에너지(Delivering Energy)’란 블로그도 운영한다. 여기에 매달 읽은 책 목록과 독후감을 올리고, 그 저자들을 찾아가 인터뷰한 글과 동영상도 게재한다. 저자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그에겐 독서의 연장이다. 지금까지 37명을 인터뷰했고, 올해 100명을 채우는 게 목표다. 이 블로그를 봤는지 최근 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렇게 책 읽는 이야기를 책으로 내보자고.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