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정의 사진] 아를에서

입력 2011-07-07 17:46


파리에서 프로방스로 향하는 기차의 창밖은 계속 밀밭이다. 금발처럼 곱게 흘러내는 밀밭이 지루해질 무렵, 불현듯 등장하는 해바라기 밭의 진노란색 향연은 비현실적이리만큼 강렬해서 온몸을 긴장시킬 정도다. 하늘은 온통 파랗다. 오직 강한 태양빛과 선연한 자연의 색만이 존재할 뿐이다. 인상파 화가들의 영감의 원천이었던 이 지역에, 고흐도 아마 이 빛과 색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내려왔을 것이다. 술과 담배에 찌든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듯이.

고흐가 말년에 머물던 아를은 프로방스에서도 아주 작은 마을이다. 지금도 인구 5만 명을 간신히 넘는, 한나절 정도를 걸으면 대강의 길을 짐작할 수 있는 아담하고 나른한 도시. 그러나 좀체 아무런 사건도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이곳에의 1년 반 동안 고흐는 그의 생에서 가장 많은 사건을 일으켰다. 론 강 위로 짙푸른 별이 흐르는 ‘별이 빛나는 밤’, 그가 손수 노란색으로 꾸몄던 ‘노란색 집’ 등 수백 점의 작품을 쏟아냈고, 그 노란색 집의 한 칸짜리 방에서 고갱과 함께 머물다 두 달 만에 헤어지는 상처를 입기도 했다. 늘 외롭고 궁핍했으며, 열정을 가누지 못해 고통스러웠던 그가 귀를 자르고, 잦아지는 발작을 치료하기 위해 정신병원에 입원한 것도 바로 아를에서였다.

지금도 아를의 포럼광장에는 그의 그림 속에서 이제 막 튀어나온 듯 똑같은 카페에 사람들이 북적거리며 앉아 있다. 우연이었을까. 초여름 그 카페 가득 메우고 있는 사람들은 화가가 아니라 사진가들이다. 아를에서는 해마다 7월 초 ‘아를에서의 만남(Rencontres d'Arles)’이라는 사진축제가 열린다. 1968년에 시작해 올해로 42회째를 맞이하는 이 행사는 운영과 내용면에서 전 세계 사진 행사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원조쯤으로 통한다. 마을 곳곳의 오래된 성당이며 유적지마다에는 50개에 달하는 전시가 열리고, 고흐를 그토록 매료시킨 별밤에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대 원형경기장과 원형극장에서 투우나 뮤지컬이 아닌 슬라이드쇼가 상영된다. 아를 지역의 관광 활성화를 위해 첫 단추를 끼웠다는 이 행사가 그러나 왜 하필 그림 관련이 아닌 사진 행사였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럼에도 7월 중순에 열리는 음악축제, 1년 두 차례씩 열리는 투우대회 등과 함께 아를의 유명세를 높인 점에서는 확실하게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따지고 보면 인상파 화가와 사진과의 인연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진의 발명 이후 화가들은 사진보다 더 정교하게 실재를 담아낼 수 없는 기술적 한계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했다. 컬러사진이 발명되기 전인 그 시절 흑백사진은 담아낼 수 없는 강렬한 색감과 작가의 주관적 묘사를 통해 차별화된 화풍을 일궈낸 것이 인상파 화가들이었다.

고흐가 입원했던 병원의 정원은 그의 그림 속에서처럼 여전히 화려하다. 현기증이 날 만큼 강한 햇살이 내리쬐는 그 정원을 둘러싼 방들에서는 지금 멕시코 특별전이 한창이다. 살아서는 한번도 주목받지 못했던 그는 알까. 그 정원에 서성거리는 젊고 가난한 사진가들이 그에게서 위로 받고 간다는 것을.

<사진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