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렇게 놀아도 될까 했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졌대요”

입력 2011-07-07 17:37


‘아이들과 제주도에서 한 달 신나게 살다 온 ’ 대담한 엄마 전은주씨 무용담

낮은 울타리를 따라 접시꽃이 피고, 파란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녹슨 철대문을 열면 갯벌이 펼쳐진 곳. 마당 평상에 앉아 “수박 먹어라” 고함치면 새까만 아이들이 잔모래를 흘리며 맨발로 달려오는 바닷가 마을. 그곳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것도 보지 않는 끝없이 게으른 휴가. 전은주(40)씨는 늘 그런 여행을 꿈꿨다. 잘 견뎌낼지 자신조차 없는 무위의 시간 말이다. 그는 스스로를 “하루에 일정 서너 건은 소화해야 직성이 풀리는 전형적인 ‘패키지형’ 관광객”이라고 했다.

그랬던 전씨가 지난해 두 아이 꽃님이, 꽃봉이와 함께 영화 ‘마르셀의 여름’ 같은 휴가를 보냈다. 꼬박 29일. 둘째의 유치원과 큰애가 다니는 학원들에 전화를 걸어 한 달을 쉬겠다고 했다. 차 드렁크에 김치 한 통과 밑반찬 물놀이도구 모자 신발 크레용 유성펜 사인펜 색깔물풀 색종이 스케치북 킥보드 씽씽카를 실었다. 직장 다니는 남편은 주말마다 합류하기로 했다. 거사 날인 2010년 7월 25일 목포 선착장에서 제주도행 페리를 탔다.

3인 가족 3박4일 제주도 여행비용은 짜게 잡아도 100만원을 훌쩍 넘는다. 웬만한 관광지 입장료가 1인당 1만원이 넘는 데다 외식비도 여간 비싸지 않다. 한 달을 살면? 상상 못할 액수가 나올 터였다. “제주도에서 한 달 살았다면 제일 먼저 하는 말이 ‘돈은?’이었어요.” 나도 그랬다. 돈은?

전씨와 9살, 4살이었던 꽃님이, 꽃봉이 이렇게 3인 가족의 한 달 제주도 체류비는 250만원이었다. 일단 비행기값은 안 들었다. 기름값과 왕복 페리요금까지 교통비는 60만원. 제주시내 오피스텔은 지인의 도움으로 시세의 절반에 불과한 한 달 40만원에 구했다. 한 달간 먹고 놀러 다니며 쓴 생활비는 150만원. 애들 신발 세 켤레, 8만원짜리 전씨 반바지 한 벌까지 포함한 액수다. 네 차례나 왕복한 남편 항공료는 마일리지로 해결했다. 다른 가족이 시도한다면 예상 경비는 ‘월세(80만원)+관리비(20만원)+교통비(60만원)+생활비(150만원)+남편 항공료=310만원+α’가 된다.

250만원은 적은 돈일 수도, 거액일 수도 있지만 분명한 건 서울에서도 돈은 쓴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더 많이. 전씨는 제주도에서 아낀 지출 목록을 불러줬다. 유치원비, 피아노 학원비, 피겨스케이트 교습비, 체험학습비….

아끼려고 아등바등한 건 아니었다. 실은 언제 또 해보나 싶어 맘껏 ‘지르고’ 오려고 했다. 제주에서의 한 달이 저렴해진 건 애들 때문이었다. 두 아이가 좋아하고 오래 머문 곳은 어김없이 무료였다. 이름 없는 바닷가, 동네 도서관, 방파제, 파라솔 하나 있는 카페. 꽃님이와 꽃봉이의 반응은 어른의 기대를 배신했다. 남들은 5분 만에 돌아볼 곳에서 한 시간을 놀았고, 한 시간은 봐야 할 명승지에서는 1분도 못 견뎠다. 산굼부리의 거대한 분화구 앞에서는 바닥을 구르는 공벌레 한 마리에 깔깔댔고, 아무것도 없는 방파제에서는 튀는 바닷물을 맞으며 떠날 줄을 몰랐다.

3박4일 여행이었다면 전씨는 아마 “그만 가자”고 재촉했을 것이다. 그러다 뿌루퉁해진 애들에게 기어이 소리 한번 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에는 흔쾌히 목적지를 바꿨다. 그해 여름 그들에게는 꼭 소화해야 할 ‘일정’ 같은 게 없었으니까. 어느덧 꽃님이네 가족의 제주 일상은 ‘바닷가∼도서관∼바닷가∼도서관’으로 단순해졌다. 29일 동안 돈 내고 이용한 유료시설은 ‘유리의 성’과 ‘김녕미로공원’을 포함해 열 곳이 넘지 않았다. 외식비도 놀랍게 적었다. 애들은 20만원짜리 회가 아니라 4000원짜리 국수에 감동했다. 하루 한 끼 외식비는 1만5000원을 넘는 일이 드물었다.

한 달이 끝나갈 무렵, 문득 알게 됐다. 아이들이 달라졌다는 걸. 전씨는 “그게 정말 놀라웠다”고 했다. TV도 컴퓨터도 심지어 책도 없는 제주도의 20평 오피스텔에서 애들은 지루해하는 법 없이 열렬하게 놀았다. 그리고 조금씩 더 많이 웃었다. 식당에서 “물 주세요”도 못하던 꽃님이는 낯선 어른들과 제법 말이 통하는 수다쟁이가 됐다. 달라진 꽃님이를 본 새 담임교사는 “우리 반에서 제일 행복한 아이”라고 했다. 전씨는 “엄마가 들을 수 있는 최대 찬사였다”고 말했다. 맨발이 어색하던 꽃봉이는 웅덩이에서 홀딱 벗고 물놀이를 했다. 두 아이는 더 많이 더 자주 싸우고 더 빨리 화해했다. 진심으로 서로의 놀이상대가 된 것이다. 주말마다 아빠를 온전히 차지한 아이들은 아빠를 바라보며 눈을 반짝였다.

제주도에서 한 달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 개구지게 까매진 애들을 바라보다 전씨는 꽃님이의 구구단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여름 내내 영어와 수학공부에 매진했을’ 꽃님이 친구들 생각은 그제야 났다. “누구는 한 달이나 애들이랑 놀았다고 ‘그 엄마 대단하다’ ‘자연주의 교육이 신념인가 보다’ 그래요. 절대 아니에요. 애들 노는 거 보면 ‘저렇게 놀아서 될까’ 하고, 공부하면 ‘어릴 때 많이 놀아야 하는데’ 걱정하고(웃음). 제가 그런 엄마예요. 근데 말이죠. 그렇게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면서 고민하는 게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 아닐까요? 보통 엄마들에게는.”

꽃님이네 한 달 휴가기는 ‘아이들과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즐거운상상)에 담겼다. 주차장에서 갯벌까지 거리, 미취학아동이 걸을 수 있는 산책로, 애들을 풀어놓아도 쫓겨나지 않을 카페와 음식점 같은, 엄마들이 좋아할 정보도 알차게 담겼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