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 출신 목회자 한기채 목사가 말하는 목회와 신학, 교육

입력 2011-07-07 16:53


[미션라이프] 교수 출신이 교회에서 담임을 하면 성공적으로 목회할 수 있을까. 교수가 작전사령관이라면 목회자는 야전사령관으로, 그 역할부터 다르다. 평생 학문적 틀을 올곧게 만들어 나가야 할 학자가 변화무쌍한 목회 현장에 뛰어들어 잘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하지만 2004년부터 서울 중앙성결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한기채(52) 목사에게는 이 같은 가설이 적용되지 않는다.

△‘사람을 세우고 세상을 구하는 융합 목회’=한 목사는 신학을 공부한 뒤 학문과 현장 사역에서 이탈한 적이 없는 ‘엄청’ 준비된 목회자다. 군목 출신인 그는 1988년 미국의 명문사학 밴더빌트대에서 유학할 때 목회와 신학공부를 병행했다. 내슈빌한인교회의 청빙을 받아 1년 반 담임한 뒤 목회 환경이 전혀 다른 미국교회에서 국제사역을 담당했다. 미국교회 내 한국어 성경공부를 인도하다가 참석자가 늘어나게 돼 한국어 예배를 이끌기도 했다. 급기야 내슈빌갈보리교회를 개척, 단독 목회도 했다. 귀국 후 1996년부터 서울신대 기독교윤리학 교수로 활동하면서 김중기 전 연세대 부총장과 함께 새사람교회에서 공동목회도 했다. 그에게 신학과 목회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신학은 교회를 위한 것입니다. 저는 감사하게도 신학을 공부하면서 목회하고, 목회하면서 가르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저는 ‘큰 목회(교회의 대형화)’하겠다는 욕심이 없습니다. 대신 목회와 신학의 가교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하고 싶습니다.”

그는 처음 중앙성결교회에서 청빙 요청이 있을 때 정중히 사양했었다. 목회자를 양성하는 서울신대 교수 역할을 만족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전임 목회를 할 준비가 안돼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8년여 전이죠. 겨울방학을 맞아 미국 시카고에 가있는데 중앙성결교회 장로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교회에서 만장일치로 저를 목회자로 청빙하기로 했다고요. 3개월 이상 갈 수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안식년을 앞두고 있던 그는 기도원에서 1주일간 기도를 했다. 그때 하나님이 그에게 요한복음 21장 18절 말씀을 주셨다. “‘내가 진실로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더 이상 갈등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오랫동안 목회 현장을 떠나지 않았던 게 이 때를 위함이었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그의 목회철학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사람을 세우고 세상을 구하는 교회’다. 중앙성결교회가 ‘서울 사대문안 도심교회’로 외국인 근로자와 생활이 어려운 계층이 적잖게 거주하는 지역에 있기 때문에 한 목사는 교육과 사회봉사에 교회의 동력을 쏟아 붓는 데 주저함이 없다. 매주 목요일 무료급식이나 인근 달동네 김치배달, 지역아동센터 운영, 소외계층 악기 교육, 영어 중국어 몽골어예배, 탈북민 직원 채용과 신학공부 지원 등은 이 같은 목회 정신의 연장선이다.

△‘보고 말하고, 깨닫고 실천하게 하는 교육목회’=1907년 설립된 중앙성결교회에서 한국교회의 대표적인 부흥사인 이성봉 목사가 담임하기도 했다. 60여개 교회를 분립개척 시킨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성결교단의 모교회다. 신길교회 신촌교회의 뿌리도 이 교회다. 서울신대(전 서울성서학원)도 이 교회에서 시작됐다. 성결대도 이 교회 홍대실 권사의 도움으로 설립됐다. 한 목사가 부임한 뒤 거의 매년 교회를 개척해온 것도 이런 교회의 DNA를 계승한 것이다. 그는 중앙성결교회 초기 신자들의 선교적 열정과 나눔의 미덕, 부흥운동의 DNA를 소중하게 여기면서 현재 교인들의 훈련과 교육에 집중하고 있다.

테마가 있는 오후예배를 통해 교회를 학습공동체로 만든 것도 이 때문이다. 10∼12주간 각계 전문가를 초청해 다양한 정보를 습득하게 하고 성도들을 아브라함반(중보기도) 안드레반(전도) 바나바반(봉사와 섬김) 디모데반(제자훈련 스그룹) 등 각자의 은사에 맞게 나눠 고강도 사역훈련을 시킨다. 부목사가 개척을 원할 땐 교회차원에서 충분한 지원을 해준다. 건물 구입뿐 아니라 3년간 사역비도 지원한다. 다음달 초 전교인 수련회를 서귀포에서 갖는 것도 부목사가 개척한 교회를 돕기 위해서다.

한 목사는 시리즈 설교를 선호한다. 기적과 비유, 지명, 습관, 성품 등 설교 주제는 교육적 성격이 매우 짙다. 설교할 때마다 ‘쇼 앤 텔(Show & Tell)’, 즉 보여주고 말하는 시청각 기법을 활용한다. ‘헨델이 전한 복음’ ‘예수가 선택한 열두 제자 이야기’ ‘삼중혁명의 영성’ ‘지명을 읽으면 성경이 보인다’ 등의 저서가 가급적 외부 활동을 자제하고 묵상하며,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설교를 철저히 준비해온 결과물이다.

그는 ‘팀목회’를 한다. 담임목사의 권한을 전문 사역자들에게 상당 부분 위임하고 자율성을 높인다. 교인들과는 매일 묵상노트를 메일링하고 스마트폰 웹 5분메시지로 소통한다. 교인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꼭 참석하려고 애쓴다. 교인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꼭 참석하려고 애쓴다. 주일 아침과 점심 식사를 성도들과 함께 줄을 서서 먹는다. 요즘 들어 청년예배 설교도 직접 담당한다. 1개월여 전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젊은 세대와 호흡하고 싶기 때문이다. 외부 전문가들과의 스킨십도 이어간다. 매주 화요일은 남산 한국기독교실업인회(CBMC)에서, 목요일은 강산CBMC에서 성경공부 모임을 인도하고 있다.

그의 끝없는 학습 열기는 해외선교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최근 네팔 정부로부터 네팔국제기독대학 설립을 정식 인가받았다. 신학, 기독교교육, 음악 관련 학사 학위를 줄 수 있게 됐다. 초대총장을 맡은 한 목사는 서울신대뿐 아니라 국내 타 교단, 교회들과 연계해 이 대학에 더 많은 학과를 개설하고 네팔을 이끌어 나갈 미래 인재들을 양성할 계획이다.

△‘윤리가 기반이 된 멸사봉공(滅私奉公)의 목회’=한 목사는 균형감각이 탁월하다. 이는 보수적인 서울신대에서 신학을 처음 접한 뒤 진보적인 밴더빌트대에서 폭넓게 공부하며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학문적 내공을 갖췄기 때문이다. 그는 과거의 소중한 전통과 유산을 살려나가되 후대의 상황과 역사적 과제를 조화롭게 만들어나가는 걸 중시한다.

“신앙은 보수 복음주의이어야 하지만 학문적 소양은 넓고 깊게 쌓아가야 합니다. 신학은 원래 틀을 만들어가는 겁니다. 몇 군데만 통용되는 틀을 갖고 있으면 다양한 경우의 수에 직면했을 때 적용 가능하지 않죠. 반대의견을 갖고 있는 상대를 만났을 때 의사진행이 불가능해집니다. 신학공부는 실험식 연구와 비슷합니다. 목회 현장에서 실천 가능한 것을 찾아가는 것도 이 같은 신학적 사고와 오랜 묵상에서 나온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한 목사는 지금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깊이 묵상하고 사색하는 시간을 자주 갖는다.

그는 무리한 교회 확장을 지양한다. 성전 건축을 택하지 않고 내부만 리모델링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교회에 있을 때 옛 건물을 새롭게 꾸며 더 훌륭하게 쓰더라고요. 교회 성장은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목회자가 무리하면 안 됩니다. 욕심을 내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성도들을 잘 양육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꼭 필요하고 시급한 사역이 있는데 교회 건축 때문에 지장을 받는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교회가 붕괴한 한국의 교육과 왜곡된 가정과 가치관을 바로 잡는데도 앞장서야 한다고 한 목사는 목소리를 높였다. 미세한 소리라도 경청할 수 있는 여유, 이웃의 고통을 보고 함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마음이 요구되는 때라고 했다. “아직 여유가 되지 않아 구상만 하고 있는데요. 이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기숙학교를 만들면 좋겠습니다. 모든 크리스천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대로 이 사회와 민족, 국가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 다움, 크리스천 다움입니다.”

그는 이 시대에 윤리목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목회자의 영적 권위는 감동적인 삶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목회자는 공적 영역을 결코 사유화해서는 안 된다. “목회자부터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개인 권한을 자기를 위해 쓰거나 의도적으로 율법을 활용해 성도들을 윽박지르면 안 됩니다. 예수님의 정신은 멸사봉공(滅私奉公)입니다. 자기를 죽여 공적인 일을 감당하셨죠. 이것이 공생애입니다. 우리도 이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한 목사는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윤리’가 필요한 시대라고 덧붙였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12절을 통해 우리의 행동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어떤 장애도 주면 안 된다고 당부했습니다. 교회의 거룩성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세상과의 차별화에 있습니다.” 교회가 거룩성, 공적 영역을 되찾으면 사회로부터 무한 신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목사는 그런 점에서 교회가 성도들을 위한 ‘토털케어(전인적, 전방위적 돌봄)’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요람에서 무덤이 아니라 모태에서 천국까지의 개념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태어나기 전 태아부터 돌봐야 합니다. 아울러 한 교인이 주님의 품에 안기기까지 전 과정에서 영적, 육적 도움을 줘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입니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