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찬희] ‘고통 없는 세금’

입력 2011-07-06 18:07


김씨의 부모는 그가 평범한 직장인이 되길 바랐다. 아니 정확하게는 매달 월급이 나오는 안정적인 회사원을 꿈꿨다. 건설현장 공사판에서 날품을 파는 아버지,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어머니에게 그는 하나뿐인 희망이었다.

초등학교까지는 공부를 곧잘 했다. 하지만 순간이었다, 희망이 절망으로 돌변하는 데 걸린 시간은. 중·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성적은 중위권을 겨우 턱걸이했다. 발버둥쳐 봤지만 잘 사는 집 아이들을 따라잡기는 힘들었다. 가난은 바로 성적이었다.

김씨는 지방에 있는 전문대학을 나와 한 중소기업의 공장에서 일한다. 부모님 바람의 절반은 채웠다고 자위한다. 그래도 현실은 만만치 않다. 아끼고 아껴도 가계부는 적자에서 헤어나기 힘들다. 다니는 회사는 툭하면 월급을 동결하거나 깎는다. 대기업의 하청업체이다 보니 납품가격을 낮추라는 전화 한 통이면 김씨 월급은 언제 얼마만큼 잘려나갈지 모른다. 그가 물려받은 가난은 차츰 계급이 됐다.

얼마 전부터 그는 매주 로또를 산다.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 때문이다. 당첨확률이 무척 낮다는 걸 안다. 그래도 돈이 곧 성적이고, 계급인 세상에서 가난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김씨가 꿈꿀 수 있는 유일한 ‘미래’가 복권이다.

복권은 ‘고통 없는 세금(painless tax)’으로 불린다. 새로운 세금을 매기려면 격렬한 저항이 따르지만 복권은 그렇지 않다. 불특정 다수의 주머니를 털어 복지사업에 쓰일 재원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가장 효율적인 세금이라고도 한다.

2002년 12월부터 발행되기 시작한 로또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매주 수많은 이들이 814만5060분의 1이라는 확률에 기댄다. 지난해 로또 판매액은 2조4207억원에 이르렀다. 로또 말고는 다른 미래를 찾아볼 수 없는 팍팍한 삶이 많다는 반증이다.

가난의 대물림은 통계로 확인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강신욱 연구위원이 1990년부터 2008년까지 도시 근로자 가구의 소득 이동성을 추적한 결과 소득 불평등이 고착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시 근로자 가구를 소득에 따라 10개 계층으로 나눠 소득계층이 바뀔 확률을 따졌더니 90∼97년 64.3%에서 2003∼2008년 57.7%로 뚝 떨어졌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신분 상승, 계급 상승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한정된 재화와 기회를 놓고 심하게 경쟁하면 불평등이 과도해진다. 가난한 자는 계속 가난하게 살게 된다. 출발선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가난은 건강 악화, 교육기회의 상실, 범죄로 이어진다.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젊은이들에게 미래는 잿빛일 뿐이다.

또한 불평등은 곰팡이 같다. 사회를 안에서부터 좀먹는다. 심각함이 드러날 즈음에는 이미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이 때문에 스웨덴, 노르웨이 등 유럽 국가들은 사회 공동체의 유지나 기초적인 평등(간단하게 말해 복지)에 많은 관심과 돈을 쏟아붓고 있다.

최근 ‘반값 등록금’을 계기로 정치권의 복지 논쟁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늦었지만 반길 일이다. 그러나 뒷맛이 씁쓸하다. 모든 복지 논쟁이 반값 등록금으로 수렴하는 동안 다른 이슈들은 시야에서 멀어졌다. 대표적인 것이 빈곤아동이다.

우리 사회에서 18세 이하 아동 가운데 방학동안 점심을 지원받는 대상이 48만명이다. 이 아이들이 커서 자신의 인생을 ‘고통 없는 세금’에 건다면 우리 사회는 과연 미래가, 희망이 있는 것일까.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다고 한들 우리 사회가 복권을 권하는 사회, 불평등이란 곰팡이가 자라는 사회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구성원 대부분이 가난하고 궁핍하게 살아가는 사회는 번영할 수도, 행복해질 수도 없다”고 설파했다. 정치권과 정부는 이 말을 가슴에 깊이 새기길 바란다.

김찬희 경제부 차장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