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바치는 고은의 戀詩… ‘상화 시편’ ‘내 변방은 어디 갔나’ 동시 펴내

입력 2011-07-06 17:42


고은(78) 시인이 두 권의 시집을 동시에 펴냈다. 53년 문학인생 최초의 사랑시집 ‘상화 시편’(창비)과 ‘내 변방은 어디 갔나’(창비)가 그것. 여든을 바라보는 원로시인의 창작 에너지와 시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는 저작이 아닐 수 없다. 이 가운데 ‘상화 시편:행성의 사랑’은 올해로 결혼 28주년을 맞은 부인 이상화 교수(중앙대 영문과)에게 바치는 118편의 연시를 모았다.

칠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파블로 네루다에게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가 있다면 고은에게는 ‘상화 시편’이 있는 것이다. 1974년 어느 날, 열네 살 연하의 이상화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받은 것으로 출발한 두 사람의 연애는 83년 결혼으로 결실을 맺는다.

6일 만난 고은은 “74년 한 통의 편지를 받은 바로 그때 상화가 나를 결정해버렸다”면서 사랑시편에 얽힌 소회를 털어놓았다. “우주 안에서는 사사로운 것이 지구상의 우리에게는 보편적인 가치인 사랑이지요. 한 인간(아내)으로부터 받고 있는 지속적인 감정을 억제할 수 없어서 사랑시편을 썼지요. 세계와 자아의 본질적인 응답이 거기에 있는 것이죠.” 그는 시집을 펼쳐 시 한 편을 낭송했다.

“세상은/세상의 부족(不足)입니다/사랑은 자못/사랑의 부족입니다//나 어쩌지요/수십년 전 그날로/오늘도 나는 감히 사랑이 떨려오는 처음입니다/다리미질 못한 옷 입고/벌써 이만큼이나 섣불리 나선/S를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허나 나 아직도 이 세상 끝 사랑을 잘 모르고 가기만 하며 갑니다”(‘사랑은 사랑의 부족입니다’ 일부)

지난 5월 5일 결혼기념일 아침, 그는 아내에게 편지를 써서 건넸다. 저녁 식탁에는 아내가 쓴 시 두 편이 놓여 있었다. “아내는 1년에 한두 편의 시를 쓰기도 하지만 이토록 사랑의 시를 두 편이나 즉각적으로 쓰는 일은 없었지요. 그 중에서 한 편을 승낙 없이 이 시집에 수록했지요.”

시집 맨 앞의 ‘어느 별에서 왔을까’는 이상화의 작품이다. “어느 별에서 왔느냐고/불쑥 묻지 말아요/어느 별에서 왔기에/우리의 사랑 이리도 끝없고 바닥도 없는 것이냐고/다그치며 묻지 말아요//이 행성의 한 점에서/내가 당신에게로 갈 때/이 행성의 한 점에서/당신은 내게로 온 것이에요/동시행동이었어요//당신의 점 속에 들어 있는 나/나의 점 속에 들어 있는 당신/그것은 우리의 별/우리의 우주”

‘상화 시편’의 표지화 역시 그가 몇 해 전 아내의 생일 때 직접 그려준 작품이다. 그는 “어떤 느낌의 그림”이냐는 질문에 “표현할 길 없는 꽃밭 같은 것”이라며 이렇게 설명했다.

“사랑에 대해서 난 멀리 떨어진 이단자로 출발하지요. 사랑은 가능하면 근친적이지 않게, 멀리 하고 싶어요. 사랑은 우리 둘 만의 것이 아니지요. 부부도 옛날의 교조적인 부부 관계는 아니잖아요. 이 사랑시편도 우리 둘 만의 사사로운 것이 아니기를 바라고 싶어요.”

“부부 간에 갈등은 없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우리 둘은 서로 짐작하면서도 긴장하는 관계”라며 이렇게 말했다. “부부 간의 갈등은 없지요. 난 무갈등은 인정하지 않지만 아내와는 아주 전범(典範)처럼 무갈등 체제예요. 싸움을 하면 어느 한쪽이 슬그머니 없어져요. 부부 싸움은 때로는 아주 매력도 있고, 때로는 증오도 있는 것인데, 그래야 진실해지고, 근데 그게 아닌 게 되어버렸지요. 아내가 화를 내면 난 뼈가 없어지고 말지요. 아내가 없었다면 나는 아마 죽었을 거예요.”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