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음악 이야기] 청교도의 새로운 미국의 신앙과 찬송가
입력 2011-07-06 17:49
영국의 아이즈 와츠 목사는 일반인도 대중 예배에서 찬송을 할 수 있도록 하여 영국의 복음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를 계기로 웨슬리 형제의 교회 부흥 운동이 18세기 영국을 휩쓸면서 감리교회의 창립을 이루게 되었다. 대중 예배에서의 찬송은 미국 부흥집회 운동에도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와츠 목사는 모든 기독교인이 공감할 수 있는 기독교의 교리와 경험에 근거한 객관성 있는 찬송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이때까지의 찬송이 시편 등을 활용한 하나님 찬양의 성격을 가졌다면 찰스 웨슬리의 작사 곡은 도전적이며 진취성을 가졌다. 복음 찬송의 성격이 달라진 것이다. 다시 말해 노래는 전도를 목적으로 한 가사가 많았으며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내용이었다. 또 회개를 소재로 하는 가사와 하나님의 자비를 체험한 증거를 가사에 담았다. 그야말로 전도와 체험에 의한 간증을 담은 가사로 그 방향이 달라진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현대 복음성가의 효시를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1559년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가 내린 통일령에 반발하고 국교회의 로마가톨릭적인 제도와 의식 등을 배척하며 칼빈주의에 투철한 개혁을 준행하는 프로테스탄트 개혁파의 활동도 주목해야 한다. 그들은 종교적 박해를 피해 네널란드와 기타 지역으로까지 피했다가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에 필그림 파더스에 정착하면서 새로운 미국의 신앙과 찬송가를 만들었다.
미국의 초기교회 음악 대부분이 영국과 유럽의 음악이 수입되어 본토의 특징과 혼합됐다. 초기의 청교도들은 유럽의 시편가를 영어로 번역하여 불렀는데 어려워서 따라 부르기 힘들었다. 그러던 중 1734년 조너선 에드워드(1703∼1758)를 중심으로 대각성운동이 일어나면서 개인적인 회개와 경험을 강조하게 되었다. 집회 시 복음적인 찬송을 하게 된 것이다.
이때 영국의 부흥사 화이트 필드(1714∼1770)가 미국에서 부흥집회를 인도하면서 와츠와 웨슬리의 찬송을 많이 불러 미국의 교회들이 시편가에서 찬송가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1800년 대부흥운동은 미국 서부(캔터키주)에서 일어났다. 사람들은 산에서 텐트를 치고 며칠씩 집회를 하였는데 이 집회의 형식에서 찬송은 중요한 예배 요소 중 하나였다. 대부분 외워서 불러야 한다는 점을 고려해 간단하고, 쉽고, 친숙하고, 기억하기 좋은 단순 민요조의 찬송이 쏟아졌다. 이 곡들은 후렴이나 합창이 반드시 붙여졌고 반복이 많았다.
지금 우리가 많이 부르는 복음찬송이 미국의 이 같은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 부흥운동의 영향으로 19세기 말까지 미국의 교파마다 찬송가와 복음찬송 출판에 열을 올렸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찬송가와 복음찬송의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교회음악이란 교회에서 사용하는 종교 음악으로서 예배를 목적으로 한다. 찬송가란 하나님의 은혜를 찬미, 찬양하는 노래를 뜻하며 찬송가에는 노래, 찬양, 하나님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복음찬송은 찬미의 제사가 아닌 하나님을 찬송하되 직접적으로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나 구원의 역사, 수단, 방법 그리고 십자가의 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 등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찬양한 노래다. 찬송가와 다르게 곡의 끝에 아멘을 붙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요즈음 현대 교회에서 흔히 불려지는 복음성가는 받는 대상이 인간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구원받은 성도의 간증을 노래하거나, 성도에게 권면하여 믿지 않는 이들에게 호소하는 노래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안에는 하나님과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노래가 함께 있다. 하나님을 예배할 때에 예배의 성격과 형식에 따라 찬송가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김기원 (관동대 음악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