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7월 7일] 큰 그릇이 되라

입력 2011-07-06 18:21


찬송 :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384장(통 434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창세기 13장 14-18절

예로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인간을 하나의 그릇에 많이 비유했습니다. 그래서 쓸 만한 사람을 가리킬 때에 “참 그 사람 그릇이 됐다”고 말하고 생각과 이해심, 관용이 크고, 스케일이 큰 사람을 “그 사람 참 그릇이 크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치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을 ‘귀한 그릇’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큰 그릇입니까?

첫째, 믿음이 큰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참으로 믿음이 큰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먼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랐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 말년에 정든 고향 땅을 떠나라고 하셨을 때에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했으나 말씀에 순종하여 무조건 떠났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입니다. 때문에 그는 인간적인 안목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는 사랑의 하나님께서 자신을 잘 인도하실 줄로 믿고 자기 생각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부족한 자신의 지식과 경험, 생각을 포기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인간들의 상상을 초월한 큰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 생각이 큰 사람입니다. 생각은 인간의 언행과 삶의 원동력입니다. 때문에 인간의 일생은 이 생각에 의해 결정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무엇보다도 가치 있고 아름다운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참으로 여유만만하고 생각이 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어려서부터 키워온 조카였지만 롯에게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고 선택의 우선권을 주고 크게 양보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생각이 큰 사람은 항상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삽니다. 또한 범사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감사 만만한 삶을 삽니다. 때문에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모순에 처한다고 할지라도 어느 누구를 탓하거나 그 어떤 인간적인 서운함이나 배신감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셋째, 관용이 큰 사람입니다. 이 관용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때문에 우리 하나님께서도 죄와 허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용서하시기 위해 독생자까지 희생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독생자를 희생시키면서까지 우리들에게 관용을 베푸셨습니다. 또한 관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그 아픈 십자가를 지시면서까지 우리를 관용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키운 조카 롯의 배신행위에도 마음 아파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았습니다. 이 관용은 그릇이 큰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그래서 관용이 큰 사람이 존경을 받습니다. 또한 모든 사람들의 신뢰를 받습니다. 그리고 너와 나를 평안하게 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도 믿음과 생각, 관용이 큰 인물이 되어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찾으시는 큰 그릇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요셉 목사(선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