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 비경에 “우와~” 정겨운 인심에 또 “우와~”… 하늘에서 본 평창의 山河
입력 2011-07-06 17:24
지아비의 뱃노래와 지어미의 아라리가 구성지게 흐르던 평창의 물길이 휘어지고 또 휘어져 원을 그린다. 떼꾼(흘러내리는 물을 이용해 뗏목을 몰아서 물아래로 내려 보내는 일을 하는 사람) 부부의 원혼이 서린 동강엔 래프팅을 즐기는 젊은이들의 즐거운 비명이 메아리치고, 형형색색의 패러글라이더는 장꾼들의 한숨이 배어있는 구절양장 고갯길을 둥둥 떠다닌다. 오대산에서 발원한 평창강과 오대천은 강원도 평창의 수려한 산과 계곡을 보듬은 채 굽이마다 비경을 연출한다. 평창읍내를 휘돌아 흐르는 평창강은 영월 서면에서 주천강을 만나 서강으로 이름을 바꾼 후 동강과 합류해 남한강으로 흘러든다.
‘국토의 오장육부’로 불리는 동강의 진면목을 보려면 평창과 정선의 경계에 우뚝 솟은 백운산(882m)을 오르는 게 정석이다. 백운산의 길목은 멧둔재 옛길과 영화 ‘웰컴투동막골’ 세트장, 그리고 고랭지 배추로 유명한 청옥산 정상의 육백마지기가 지척인 미탄면의 진탄나루.
1970년대 말까지도 떼꾼들이 쉬어가던 진탄나루는 어느새 래프팅 명소로 바뀌었다. 백룡동굴 앞의 절매나루에서 출발한 형형색색의 보트가 황새여울의 거친 물결을 뚫고 진탄나루까지 4㎞를 꿈결처럼 흐른다. 진탄나루에서 문산나루를 거쳐 영월 섭세강변까지 이어지는 13㎞ 길이의 물길은 동강 최고의 래프팅 코스.
진탄나루에서 동강을 거슬러 문희마을까지 이어지는 조붓한 강변길은 10여년 전에 만들어졌다. 그 전에는 몇 가구에 불과한 문희마을 주민들이 나들이라도 하려면 강변 자갈밭을 걸어 다녀야 할 정도로 외진 곳이었다. 큰 비라도 내리면 물에 잠겨 통행이 두절되는 강변길에는 안돌바위라는 거대한 바위 하나가 길을 가로막고 있다.
안돌바위에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온다. 옛날에 떼꾼 남편이 황새여울에서 뗏목 사고로 목숨을 잃자 부인이 남편을 찾아 이 바위를 안고 돌다 물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바위 옆에는 떼꾼 부부 위령비가 세워져 오가는 나그네들을 숙연하게 한다. 개망초 군락에 뒤덮인 강 건너편은 영월 땅으로 빈집 두 채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서있다. 지난해까지 홀로 살던 노인이 줄배를 타고 건너다니던 보금자리였으나 연초에 노인이 떠나자 줄배마저 사라져 더욱 쓸쓸하게 보인다.
진탄나루에서 산제비나비와 뿔나비가 낙엽처럼 흩날리는 강변길을 2㎞쯤 거슬러 오르면 동강 푸른 물이 하얗게 부서지는 황새여울이 나타난다. 강심에 뿌리를 내린 검은 바위가 황소처럼 생겨 ‘황쇠여울’로 불렸으나 외지인들이 강원도 사투리를 잘못 알아듣는 바람에 황새여울로 굳어졌다. 황새여울의 검은 돌들은 표면에 화려한 무늬가 새겨진 칠보석이다.
10년 전만 해도 인기척이 그리웠던 문희마을은 동강이 숨겨놓은 보석 같은 마을이다. 그러나 지난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백룡동굴이 개방되고 음식점과 펜션이 들어서면서 안타깝게도 옛 모습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문희마을의 터줏대감은 20여년 전 잘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첩첩산중을 찾아 들어온 우문제씨. 그가 아내와 손수 지은 문희농박은 동강을 찾는 사람들이 반드시 쉬어가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동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칠족령은 백운산 중턱에 위치한다. 칠족령(漆足領)은 옻칠을 하던 한 선비 집의 개가 발에 옻칠갑을 하고 사라졌는데 그 자국을 따라가자 금강산 못지않은 동강 물굽이가 발견됐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평창과 정선을 잇는 칠족령은 험준한 고갯길로 옛날에 정선으로 부임하던 관리들도 이곳에서는 말이나 가마에서 내려 걸어야 했다고 한다.
백룡동굴 매표소에서 칠족령까지는 약 1.7㎞. 매미소리 요란한 산길은 처음엔 가파르지만 이내 평탄한 숲길로 바뀐다. 청량한 숲에서는 맑은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길섶에는 온갖 산나물들이 자라고 있다. 허물어진 돌담으로 이루어진 산성터를 지나면 나뭇잎 사이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칠족령과 동강이 가깝다는 신호다. 굽이치는 동강이 발아래 굽어보이는 절벽에 만들어진 칠족령 전망대는 감입곡류천인 동강의 모습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다.
동강은 칠족령 아래에 위치한 정선 제장마을 앞에서 뼝대(절벽)에 부딪쳐 하얀 물결을 만들며 휘돌다 다시 오른쪽 뼝대에 막혀 90도로 꺾이는 장관을 연출한다. 동강의 물길을 가로막으며 툭 튀어나온 지형은 배르매마을로도 불리는 소사마을. 동강은 소사마을을 휘돌아 영월 연포마을 앞에서 문희마을로 흘러든다. 연포마을의 폐교는 영화 ‘선생 김봉두’의 촬영지.
칠족령 전망대에서 동강을 가로막는 뼝대 위를 30분쯤 걸으면 협곡 사이에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놓은 ‘하늘벽 구름다리’가 나타난다. 바새마을 앞 105m 높이의 뼝대 위에 설치된 구름다리에 서면 오금이 저리지만 발 아래로 흐르는 동강의 절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용틀임하듯 굽이치는 동강을 파노라마로 보려면 백운산 정상에 오르는 수고를 더해야 한다.
동강은 한 물줄기지만 평창, 정선, 영월의 경계를 넘나들며 흐른다. 강의 이쪽이냐 저쪽이냐에 따라 이웃마을이지만 행정구역이 달라진다. 다리가 없다보니 문희마을에서 강 건너 연포마을로 가려면 강과 산을 에둘러 반나절을 걸어야 한다. 그래서 동강에 사는 사람들은 겨울에는 섶다리를 건너고 여름에는 줄배를 타고 강을 건너 서로 소통을 해왔다.
동강 못지않게 구절양장 흐르는 평창강도 그림 같은 절경을 연출한다. 평창강이 가장 멋있게 보이는 곳은 평창읍내가 한눈에 보이는 장암산(836m)의 패러글라이더 이륙장. 평창의 골골을 적신 물길은 평창읍내를 보듬고 한바퀴 큰 원을 그린다. 완벽한 물돌이동의 절경을 가슴에 담으려면 패러글라이더를 타고 번지점프 하듯 이륙장에서 뛰어내려야 한다.
평창=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