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미술이란 무엇인가’ 세미나… 십자가는 없다, 대신 신앙고백을 덧칠했다
입력 2011-07-06 17:48
독서 장애를 갖고 있던 프레드 폴섬은 미술로 장애를 극복했다. 1964년 뉴욕의 프랫예술대학에 입학한 그는 3년 뒤부터 추상회화를 시작으로 인상파의 경향을 띤 작품을 그렸다. 그러나 알코올의 노예가 됐고 스트립바도 자주 드나들었다. 그는 거기에서 사람들이 즉흥적으로 행동하고 본능적 경쟁심의 희생물이 되어 가는 것을 경험했다.
그런 폴섬이 포스트모던, 우리시대의 기독교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소개됐다. 사랑의교회 미술인선교회 주최로 지난 2일 서울 서초동 국제제자훈련원에서 열린 ‘2011 기독교미술 세미나’에서다. ‘기독교 미술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발제한 최태연(백석대대학원 기독교철학과) 교수는 “폴섬의 주제는 구원에 있다”고 밝혔다.
그의 대표작 ‘담배에 불을 붙이는 에릭’ ‘싸움’을 보면, 스트립바의 여성들과 마약 중독자들이 강렬한 색채와 과장된 누드, 때로는 초현실주의적인 기법으로 등장한다. 작품 어디를 봐도 십자가는 없다. 그러나 폴섬은 작품 속 에릭에게도, 스티립바를 전전하는 쇼걸에게도 구원의 길이 있음을 보여준다. 문자인 ‘EXIT(비상구)’를 통해서다. 최 교수는 “알코올 중독자였던 폴섬이 75년 예수님을 믿고 술을 끊은 뒤 자신에게도 가능했던 구원의 역사를 ‘EXIT’라는 구원의 문 그림으로 보여주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기독교 미술은 바로 폴섬처럼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경험하고 그것을 재창조하는 인간의 활동을 말한다. 크리스천 작가 자신이 내면세계를 표현하고 자기의 신앙과 영적인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을 보자. 고뇌에 찬 노년의 렘브란트 얼굴이다. 이는 곧 하나님 앞에 선 렘브란트 자신의 모습, 즉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심판 등을 자신의 얼굴에 담았다.
넓은 의미에서 기독교 미술은 기독교의 관점(세계관)에서 다양한 주제의 이미지를 다룬다. 여기엔 특별한 유형이 없다. 선교사 부모를 둔 팀 로울리는 98년 ‘당신이 보는 것’을 그렸다. 작품 속 주인공은 로울리의 장애인 아들. 비록 다른 사람이 보기엔 장애인이지만 로울리의 눈엔 하나님의 아름다운 형상을 지닌 얼굴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박수근 화백도 기독교의 관점에서 이미지를 다뤘다. 62년 작 ‘시장의 사람들’ 어디에도 교회 건물은 없다. 하지만 이 작품이 기독교 미술인 것은 박 화백이 신앙인의 눈으로, 하나님의 따뜻한 마음으로 가난한 서민들의 삶을 그렸기 때문이다.
또 세미나에선 일본의 기독교 미술 작가들도 소개됐다. ‘일본의 현대 기독교 미술’에 대해 강의한 한정희(홍익대 박물관장) 교수는 “한국의 현대 기독교 미술의 흐름은 제대로 기술되지 못하고 있지만, 일본은 우리보다 이 분야의 작품이 더 많고 작가도 많이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야시 다케지로(1871∼1941)의 1904년 작 ‘아침의 기도’는 대표적 기독교 미술이다. 아침에 일어나 조용하게 기도하는 가족의 진지함과 소박함은 믿음의 호소력을 느끼게 한다. 기독교 미술을 전업으로 구사했던 와타나베 사다오(1913∼96)는 노아의 방주나 요나 이야기, 최후의 만찬 등을 자주 그렸는데, 400여점에 이른다. 특히 ‘최후의 만찬’에서는 참석자 모두 일본인으로 묘사되고 있으며 음식 역시 도미나 스시 같은 일본식인 점이 특이하다.
한 교수는 “일본의 최초 여류화가인 야마타 린(1857∼1939)부터 와타나베에 이르기까지 뛰어난 작가들이 계속 이어지면서 일본은 풍성한 기독교 미술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며 “기독교 인구가 전체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일본이지만, 기독교 미술에서 만큼은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고 세미나에 참석한 크리스천 작가들에게 제안했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