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20년, 민선 5기 1년] 지자체-의회간 정략적 힘겨루기에 풀뿌리 ‘훼손’
입력 2011-07-05 18:48
③20년 흘러도 정착되지 않은 지방자치
“민선 5기 서울 행정은 지방자치 출범 이후 가장 혼란스러웠다.”
이규환 중앙대 행정대학원장은 5일 “집행부와 의회 간 갈등은 장기적으로 지방자치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민생 챙기기는 뒷전으로 밀려 시민들은 당장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주도권 싸움에 지방자치 실종=민선 5기는 지방자치 제도가 재도입된 후 처음으로 지방자치단체장의 당적과 다른 정당이 의회를 장악하는 사태들이 발생했다. 그러면서 자치단체와 지방의회의 갈등이 본격화됐다. 특히 여소야대 현상이 나타난 서울시와 경기도, 충남도, 경남도에서는 지방자치의 양대 축인 두 기관이 물과 기름처럼 서로 반목하면서 지방자치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을 키웠다.
민선 5기 오세훈 서울시장과 서울시의회는 양화대교 구조개선 사업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무상급식 전면 실시 여부를 놓고 갈등이 최고조로 치달았다. 오 시장은 지난해 12월 무상급식 조례안이 시의회에서 통과된 이후 6개월여간 시의회 출석을 거부했다. 이에 민주당 측은 오 시장의 핵심 사업 관련 예산을 모두 삭감하며 맞불을 놨다.
최근 감사원 감사 결과 서해뱃길 사업과 관련해 수익성 및 타당성 검토가 부족했고, 한강 반포대교 인근 세빛둥둥섬 사업의 경우 민간 업체에 특혜를 줬다는 지적까지 나오자 민주당 소속 시의원들의 공격은 더욱 거세졌다. 민주당 시의원들은 최근 한강르네상스 사업에 대한 행정사무조사를 추진하기로 했다.
제주도와 제주도의회는 해군기지 건설 사업을 놓고 사사건건 대립 중이다. 도의회는 결의문까지 채택하면서 해군기지 건설공사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공사 중단이 사실상 어렵다는 우근민 제주지사의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경기도에서도 대권행보 중인 김문수 지사와 이를 적극 견제하려는 도의회 민주당 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도의회는 이명박 정부와 김문수 지사의 핵심 정책인 4대강 사업과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에 대한 반대특위를 구성, 연일 싸움을 벌여 왔다. 무소속 김두관 경남지사는 59석 중 38석을 차지해 도의회를 장악한 한나라당 의원들과 무상급식 및 4대강 살리기 사업 등을 놓고 힘겨루기를 계속하고 있다.
기초단체와 기초의회도 알력으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성남시의회는 집행부와 의회 내 여야 간 갈등으로 지난 2월 이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지난달 17일에는 장대훈 의장과 한나라당 의원들이 명예훼손, 모욕 혐의 등으로 시 행정기획국장을 검찰에 고소·고발하자 시민 15명이 직무유기 혐의로 한나라당 의원들을 고발했다.
◇대형 국책사업 유치에 지자체 간 갈등도 격화=전북도와 경남도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유치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결국 본사를 포함한 LH가 모두 경남으로 이전키로 결론났지만 아직도 전북도에는 앙금과 혼선이 남아 있다.
경북도, 경남도, 울산시와 연합한 대구시는 신공항 밀양 유치를 주장하며 가덕도 유치를 희망하는 부산시와 극단적으로 대립했다. 대구시와 부산시는 상대방의 신공항 유치 논리를 비난하며 갈등의 골을 키웠다.
신공항 사태 이후 바로 이어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유치전 역시 신공항 사태의 연장이었다. 이때도 시는 경북도, 울산시와 연합해 과학벨트 유치를 주장했다. 이에 과학벨트 유치 1순위라고 여기고 있던 충청권과 갈등을 빚었다. 결국 과학벨트 유치에 실패하고 연구단 50곳 중 10곳을 분배받는 것으로 사태가 일단락됐지만 대구시는 ‘욕심쟁이 지자체’라는 오해까지 받게 됐다.
◇지자체장 줄줄이 구속 구태 재연=민선 4기 기초단체장 42.2%가 비리에 연루돼 기소됐다. 지난해 6·2 지방선거가 끝난 지 겨우 1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법정에서는 선거법 위반 혐의 및 각종 비리 연루 의혹 등으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전북에서는 현재 남원시장과 순창군수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을 받고 공석 상태다. 특히 민선 2기부터 4기까지 단체장이 모두 줄줄이 구속돼 중도 사퇴한 전북 임실에서는 현 군수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받고 있다. 김세호 전 충남 태안군수는 올 초 대법원으로부터 당선무효형인 벌금 500만원이 확정돼 군수직을 상실했다. 울산 지역에서는 기초단체장 5명 가운데 6·2 지방선거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한 4명 중 2명이 유죄를 선고받아 재선거가 치러졌다. 전남에서는 단체장 가운데 1명이 형 확정으로 사퇴했고, 2명은 현재 재판받고 있으며 1명은 벌금형을 받았다.
지금까지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광역의회 의원 39명 중 7명에 대해 당선무효형이 확정됐으며, 기초의원은 118명이 기소돼 22명이 당선무효형을 받았다.
이런 가운데 일부 단체장들은 자신의 선거 캠프에서 일했던 측근을 핵심 요직에 앉히거나, 반대로 전임 단체장 시절 주요 보직을 맡았던 간부를 대기발령 또는 좌천시키는 보복성 인사를 단행해 잡음을 일으켰다.
또 일부 지방의회에서는 의장단 선출과 상임위원회 구성 등 자리 배분을 둘러싸고 마찰을 빚어 주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지방자치 제도가 완전히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온전한 정착을 위한 시행착오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황일송 기자 il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