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영어 간판 의무화’ 추진 논란
입력 2011-07-05 18:16
미국 뉴욕시 의원들이 상점 간판에 영어 표기 의무화를 추진해 이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고 4일(현지시간) AP통신이 보도했다. 시 당국은 한국어와 중국어로 된 간판이 지나치게 많아 다른 나라 출신들이 알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화적 다양성을 훼손하는 조치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영어 60% 이상 써야”=뉴욕시에서 논의 중인 법안은 ‘간판 내용의 60% 이상을 영어로 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안 제안자는 댄 핼로런 의원과 중국계 피터 구 의원이다. 4년 유예 기간 뒤에도 영어 간판을 걸지 않을 경우 최하 150달러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도 법안에 포함시켰다.
공화당 소속 두 의원이 타깃으로 삼은 곳은 두 의원의 지역구인 뉴욕시 퀸스의 플러싱 지역이다. 한국인과 중국인이 운영하는 상점이 밀집한 곳으로 대부분 간판이 한국어와 중국어로 쓰여 있다. 플러싱 지역 인구는 약 17만6000명(2000년 기준)으로 44.3%가 아시아계다.
◇찬반 논쟁 뜨거워=두 의원은 ‘안전’을 영어 간판 의무화의 가장 큰 명분으로 들었다. 화재, 범죄 등 사고 발생 시 현행대로라면 경찰과 소방관이 사고 장소를 재빨리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들은 간판을 바꿀 경우 한국어·중국어를 잘 모르는 현지인도 상점을 쉽게 찾을 수 있어 상인들에게 유리하다고 주장한다. 비(非)한국·중국계의 소외감도 이유로 들었다. 민주당 그레이스 멩 의원은 “문제의 핵심은 영어 간판이 아니다. 이웃끼리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반면 지역 상인들은 플러싱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플러싱중국상인연합회 피터 투 사무국장은 “이곳이 특수한 지역임을 생각해야 한다. 아시아 문화를 존중해 달라”고 말했다.
상인들은 대부분 중소 자영업자여서 최소 500달러(약 53만원)에서 최대 2만 달러(약 2100만원)인 간판 교체 비용도 부담이다.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플러싱 지역에서 민주당 시 의원을 지낸 존 리우 뉴욕시 감사원장 측은 “8년 전 실태 조사 결과 영어를 포함하지 않은 간판이 별로 많지 않았다”며 “영어 간판 의무화는 필요 없다”고 했다.
◇전망=법안이 의회를 통과할지는 확실치 않다. 시 의회 내부에서도 문제와 관련해 여러 목소리가 있어서다. 다이애너 레이나 시의회 중소기업위원장은 “창업 이민자와 정부 사이에 긴장을 조성할 수 있다”며 법안에 유보적 태도를 밝혔다. 반면 영어 글씨 크기까지 법으로 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