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김명호] 딱 부러운 한 가지
입력 2011-07-05 17:49
민주정치 제도가 가장 잘 실현되고 있다고 해서 미국 정치가 모두 부러운 건 아니다.
정치의 본질이 정권 획득에 있기에 미국 정치에서도 꼴사나운 여야 충돌이나, 당파적 이익에 매몰돼 국민에게 외면당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오히려 이익집단의 눈치를 보고, 돈에 휘둘리는 게 우리 정치보다 심할 때도 많다. 다만 여야가 다투는 과정에서 싸우더라도 질서 있게 싸우고, 이성적이며, 상대방 설득을 최고의 전략으로 삼는다는 점이 우리네 정치하고는 좀 다르다. 부러워할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에게 개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나 할까.
미국 정치에서 딱 부러운 게 한 가지 있다. 바로 국익과 관련된 외교·안보 분야의 고위직 인사와 이를 흔들지 않는 정치권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서 진심 어린 환송을 해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의 퇴임식을 보면서 그런 점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게이츠는 누가 뭐래도 공화당 사람이며, 보수적 인사다. 민주당과 정반대 성향인 강경보수파 네오콘의 군사정책을 충실히 이행하던 국방장관이었고,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 때는 중앙정보국(CIA) 국장이었다.
오바마는 취임 초 그를 유임시켰다. 정권 내부에서 일부 반대는 있었지만, ‘두 개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다 초당적 내각 구성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반대론자들을 설득해 밀어붙였다. 게이츠의 관료적 경험과 군으로부터의 신뢰에 높은 점수를 줬다. 그는 미국 역사상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유임된 첫 국방장관이다. 의회도 게이츠의 능력과 정치적 중립 태도를 높이 샀다.
조지 테닛 전 CIA 국장(1997∼2004)도 같은 사례다.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0년 빌 클린턴 민주당 정부로부터 8년 만에 정권을 다시 찾아왔음에도 클린턴이 임명한 테닛을 그대로 활용했다. 이유는 역시 국익을 위해서였다.
테닛의 국장 재임 시 9·11테러가 발생했다. 미 의회 9·11조사위원회는 장기간 조사 끝에 ‘CIA의 집단사고 경향이 9·11테러 예측의 실패 원인’이라고 규정하고, 정보기관들을 통괄하는 국가정보국(DNI)과 백악관 대테러 보좌관 신설을 건의했다. 비난은 CIA로 집중됐다. 하지만 부시는 그를 경질하지 않았다. 의회도 CIA 국장을 당장 갈아 치우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당시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CIA의 능력과 역할을 강도 높게 비판했지만, 정치적 요구의 핵심은 ‘재발 방지’와 ‘정보기관의 능력제고’로 모아졌다. 그를 흔들지 않은 것이다. 테닛은 2004년까지 CIA 국장으로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조직을 추스르는 역할을 했다.
로버트 뮬러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부시 정권 때부터 10년째 FBI 국장을 맡고 있으며, 올해 9월 임기가 끝난다. 오바마는 그의 임기 2년 연장을 의회에 요청했다. 그는 대(對)테러 업무와 연방범죄 수사에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았고, 현 시점에서 그의 교체는 국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임기연장의 이유였다. 대통령의 요청에 의회는 반대하지 않았다. 다만 공화당 일부 의원들이 ‘백악관이 후임자를 찾는 일을 게을리 했다’고만 점잖게 힐난했을 뿐이다. 상·하원 의원들도 국익에 보탬이 된다는 점에 동의했고, 정략적으로 접근하지 않은 것이다.
국방장관, CIA 국장, FBI 국장 등은 정권의 핵심 요직이자 권력기관의 수장들이다. 우리의 경우는 정권이 바뀌면 최우선 물갈이 대상들이다. 새로 기용되는 사람들도 쇄신이라는 명분으로 전임 정권 색깔 지우기를 최우선 과업으로 설정한다. 그런 게 충성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고, 당연한 일처럼 해오고 있다. 임명권자나 발탁된 사람이나 장기적인 국익과 조직의 능력 제고보다는 정권 안보나 자기사람 쓰기, 국가보다 권력자에게 충성하기가 일반화돼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국익 관점에서 사람을 기용하는 대통령, 이를 흔들지 않는 의회, 정권 수호가 아니라 국가 수호를 지향하는 기관장들. 미국 정치에서 딱 부러운 한 가지이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