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문일] 사도세자의 죽음
입력 2011-07-05 17:49
최근 3주 동안 EBS의 ‘역사이야기’를 시청했다. 서울대 국문과 정병설 교수의 ‘권력과 인간’ 주제 강의가 월·화요일 자정을 넘긴 시간에 한 시간 동안 방송됐다. 정 교수는 조선왕조의 몇 안 되는 명군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영조와 그의 아들 사도세자 간 갈등과 파국을 문헌 기록을 통해 검증하려 했다. 특히 ‘사도세자는 당쟁의 희생양’이라는 통설을 반박하려는 뜻을 감추지 않았기 때문에 흥미가 더했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사도세자가 불편한 관계에 있던 노론에 의해 모살(謀殺)됐다는 주장을 적극적으로 펴고 있다. 그의 저서 ‘사도세자의 고백’(1998)은 이 주제의 베스트셀러다. 이 소장은 사도세자를 제거하려는 노론의 음모를 당쟁 구도 속에서 추적하고 있다. 그러나 사료는 빈약하고 추론이 풍부하다. 사도세자 죽음의 진상과 관련된 핵심 기록이 조선왕조실록과 그 초고인 승정원일기에서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는 만년의 영조에게 아버지의 불명예와 관련된 기록을 삭제해 달라고 간청해 뜻을 이뤘다. 유교국가 조선에서 반드시 피하고 싶은 멍에라면 불충과 불효일 것이다. 실록에는 불민한 사도세자를 꾸짖고 구박하는 영조의 언행은 기록되어 있지만 가혹한 아버지에 대해 사도세자가 반항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 공백을 메우는 것이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이다. 정 교수는 영조실록과 승정원일기, 한중록과 기타 문헌을 대조해 숨은 그림을 맞추려 했다. 이 소장은 한중록을 불신하는 대표적 학자다.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내몬 주역인 당시 영의정 홍봉한의 딸 혜경궁 홍씨가 친정의 연루 사실을 감추고 사도세자를 정신이상자로 몰아가려 한 ‘정치적 자서전’으로 보는 것이다.
정 교수는 문헌 기록과 상식에 의지하려는 실증주의 입장에 섰다. 그의 강의는 설득력이 있는 대신 평면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이 소장은 기록의 공백 부분을 과감한 정치적 상상력으로 채웠다. 그의 추론은 입체적이지만 근거 부족으로 영원한 가설에 머물 수밖에 없다.
사도세자가 뒤주에 들어간 1762년 윤5월 13일은 양력으로 환산하면 7월 4일이다. 한여름 밀폐되다시피 한 공간에서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그의 죽음이 확인된 것은 7월 12일이었다. 마침 프랑스로부터 찾아온 조선왕조의궤 중에 사도세자의 요절한 장남 의소(懿昭)세손의 장례식 의궤가 4일 공개됐다. 부자의 이른 사별이 살아서 겪는 파탄보다 나을까.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