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채광·슈퍼 단열… 밖은 찌는데 안은 쾌적

입력 2011-07-05 17:26


최근 정부가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의 세부 시행방안으로서 부문·업종별 감축목표를 발표했다. 수송부문과 건물부문의 감축목표가 2020년까지 배출전망치(BAU) 대비 34.3%와 26.9%로 산업부문의 감축목표(18.2%)보다 훨씬 더 높다. 제조업의 온실가스 감축부담이 자동차와 주택 소비자에게 전가된 셈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지만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노력 과정에서 “건물부문은 가장 낮게 달린 과일”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건축부문의 감축이 가장 쉽고 성과도 가장 크게 나타났던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탄소제로건물의 실증사례를 살펴보고, 관련기술의 채택과 확산을 가로막는 요인과 규제 및 인센티브 정책을 점검해 본다.

비가 간간이 내리다 그친 지난달 30일 인천 경서동 종합환경연구단지 기후변화연구동을 찾았다. 햇볕이 비치는 단지 내 도로는 벌써 뜨거워졌지만, 탄소제로건물인 기후변화연구동 안은 쾌적했다. 탄소 제로 건물은 기후변화의 주요 원인 물질인 온실가스가 배출되지 않도록 설계된 건물이다. 업무용으로는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탄소제로건물 2개월 살아보니=지하1층, 지상2층 연면적 2500㎡(약 756평)의 크지 않은 건물이지만 건축비가 일반건물의 1.4배인 89억원이 들었다. 이 초현대식 건물에는 자연 채광과 슈퍼 단열 및 다양한 태양광 발전 등 모두 66가지 기술이 적용됐다. 건물 벽에 부착된 태양광발전용 모듈은 모두 871장. 이 가운데 박막투과형 태양광시스템은 흐린 날에도 발전이 가능하다.

현재 국립환경과학원 기후변화연구과 직원 35명이 근무하고 있다. 홍유덕 과장은 “빛과 냉·난방을 최소화하면서도 근무환경이 좋아 직원들이 매우 만족해한다”면서 “정원은 56명이지만 근무공간을 이 건물로 옮기기를 원하는 직원이 많다”고 말했다.

오늘의 발전량은 45.5kwH다. 1층 제어실에는 오늘의 전력생산과 사용현황이 실시간으로 모니터에 나타났다. 기후대기연구부 이석조 부장은 “맑은 날에는 하루 400kwH를 발전하지만, 오늘은 10분의 1에 불과하다. 지난 4월 문을 연 후 지금까지는 전력사용량이 생산량보다 적어서 흑자를 기록했다. 앞으로 혹서기와 혹한기를 지내봐야 전체적인 균형 여부를 파악할 수 있지만 하루 전기사용량이 200kwH 안팎으로 평균전력 생산량보다 훨씬 적다. 연간 전력수지 흑자를 낙관한다”고 설명했다.

2층 연구실에 들어서자 센서 감지로 입구의 전등이 자동으로 켜졌다. 창문 바깥에 설치된 블라인드를 통해 옅은 햇살이 들어왔다. 이 ‘일사조절형 외부블라인드’는 실내 밝기와 온도에 따라 자동으로 조절된다. 겨울철에는 블라인드가 햇볕을 최대한 받아들이는 각도로 움직인다. 반면 여름철에는 밑의 두 칸을 닫아서 열 유입을 차단하고 위의 한 칸만 빛을 따라 움직인다. 환경과학원 이재범 연구사는 “이 블라인드는 창문 외부에서 움직인다는 것이 효율성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햇빛이 더 강해지면서 자연 채광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인식됐는지 사무실 전원이 꺼졌다. 다만 복도 쪽과 가까운 천정에 설치된 자연채광등이 은은한 빛을 발했다. 이 자연채광등은 옥상에 설치된 반구형(半球形) 자연채광장치와 직접 연결돼 있다. 실내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1000ppm에 이르면 저절로 환기장치가 가동돼 실내 열이나 냉기의 손실을 막는다.

◇요소별 탄소감축 기술=이 건물에 적용된 탄소감축기술은 크게 패시브 기술과 액티브 기술로 나뉜다. 전자는 단열 등을 통해 에너지부하를 낮추는 것이고, 후자는 태양광 등의 자연에너지 기술을 말한다. 패시브 기술의 요체는 슈퍼 단열과 3중 유리창 및 자연채광시스템을 통한 냉·난방 및 조명부하의 감소다. 이를 위해 일반건물(60∼80㎜)보다 두꺼운 125㎜의 슈퍼단열재를 사용했다. 이런 패시브 디자인을 통해 소요 에너지의 40%를 절감한다.

기본적으로 전력은 태양광이다. 냉·난방은 태양열과 지열의 하이브리드 공급시스템으로 충당한다. 그러나 컴퓨터·복사기 등 사무용품에는 일반 전력도 함께 사용된다. 반면 평소 맑은 날에 남아도는 전력은 연구단지내 다른 건물에 공급한다. 이처럼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필요한 에너지의 60%를 해결한다. 이 건물에서 줄일 수 있는 온실가스는 연간 100t 정도로 돈으로 환산하면 1억여원이다. 이산화탄소 100t은 2000㏄ 승용차로 서울과 부산을 500회 왕복할 때 나오는 탄소량과 맞먹는다.

◇낮게 달린 과일, 공공건물의 탄소감축=올해 말부터 공기업 본사가 이전하는 도시에서 공공기관 건물의 신축이 시작된다. 세종시와 혁신도시에도 건물이 배치되기 시작한다. 전문가들은 이들 건물에 강도 높은 온실가스 절감기술과 에너지 효율기준을 적용하면 민간부문에 연차적으로 신속하게 전파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의 유승직 센터장은 “해당 공공건물에 패시브하우스나 그에 준하는 정도의 에너지절약 기술 채택을 의무화하면 기술과 상품의 시장이 형성됨으로써 건물부문 온실가스 감축 속도가 빨라지는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패시브하우스는 전기로 환산한 총에너지소비량이 주택은 연간 ㎡당 120kwH, 사무용 건물은 150kwH를 넘으면 안 된다. 국토해양부는 2010년부터 공공기관이 신축하는 업무용 건물에 대해 에너지효율 1등급을 의무화했다. 1등급이라고 해 봐야 연간 ㎡당 300kwH 이하로 패시브하우스와는 거리가 멀다. 그나마 아파트는 한국토지주택공사가 짓는 것만 에너지효율 2등급을 의무화했다.

2008년 기후변화연구동 건립에 착수했던 고윤화 국립환경과학원 전 원장은 “건물에 대한 에너지효율 규제가 유명무실하다”면서 “장기목표는 높게 잡고 있지만 세부 실천계획이 부실하고 그나마 실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