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조용래] 韓·日 기업연대 기대 크다

입력 2011-07-04 18:07


일본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은 지난 4월부터 본사 기능의 일부를 서울 지점으로 옮겨 ‘글로벌 코리아영업부’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한국 기업과 글로벌 비즈니스를 촉진하겠다는 의미다. 일본 초대형은행이 한국 기업의 해외 프로젝트에 자금 융자는 물론 재무적인 어드바이스를 제공하는 구도다.

최근 2∼3년 새 한국 기업과 일본 기업의 연계 움직임이 매우 활발하다. 예컨대 대우건설이 지난 5월 수주한 북아프리카 모로코 석탄화력발전소의 경우, 1조3000억원 규모의 대형 플랜트 수주 과정을 도맡았던 것은 대우건설이 아니라 일본의 미쓰이물산이었다.

주한 일본대사관 경제부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2008∼2010년 3년 동안 미쓰비시, 미쓰이, 이토추, 스미토모, 마루베니, 소지쓰 등 일본 6대 상사를 통해 일본 기업이 한국 기업에 발주한 사업규모는 1조엔(13조원), 한·일 기업이 서로 연계한 투자안건의 사업 총액은 약 1조7500억엔(22조7500억원)에 이른다. 2008년 이전 한·일 기업 간 연대는 이렇다할 내용이 없었음을 감안하면 놀랄 만한 성적이다.

협력 통한 비즈니스 모델 구축

우야마 도모치카(宇山智哉) 주한 일본대사관 경제공사는 한국에 진출한 일본 상사의 역할이 바뀌었다고 지적한다. 2∼3년 전만 해도 일본 상사들은 일본제품을 한국에 판매하는 데 중점을 뒀으나 이젠 양국 기업이 연계해 세계 각국에서 ‘조인트 벤처 비즈니스’를 전개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27일 일본 산케이신문그룹의 종합경제정보사이트 산케이비즈는 ‘기술의 한국, 일본이 (제3국에) 판매 공세를 편다’란 제목의 기획기사에서 양국 기업들의 연계가 가속화되면서 세계에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6대 상사들이 한국 기업의 기술·가격경쟁력, 빠른 납기능력 등을 높이 평가한 결과다.

한국의 기술력과 일본 기업의 풍부한 해외사업 노하우를 접목시켜 제3국에 패키지 수출을 하는 한·일 간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정착되고 있는 모습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30년까지 전 세계 인프라 개발 수요는 약 71조 달러, 아시아 역내에서만 2020년까지 8조 달러다.

한국 주요 은행들의 자금조달 및 재무적 컨설턴트 능력이 아직 미흡한 단계에서는 한국 기업과 일본 대형 민간은행과의 연계는 불가피하다. 우리 은행들의 역량강화 방안은 별도로 점검해야 할 사안이라고 하겠으나 한·일 기업 연대는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또 하나의 변화가 시작됐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기업의 한국 직접투자가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진으로 부품·소재 공급 네트워크에 적잖은 차질이 빚어진 것을 경험하면서 안정적인 공급선 확보 차원에서 한국을 부품 공급기지로 특화하겠다는 발상이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달 28일 세계적인 첨단소재기업인 도레이는 한국법인 도레이첨단소재에 2022년까지 1조363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보다 앞서 지난 5월 스미토모화학은 2500억원의 터치패널공장을 신설키로 했으며, 도시바는 풍력발전기 사업자인 유니슨과 업무제휴하고 400억원의 출자를 발표했다.

양국 FTA 협상 재개 계기로

대지진 이전부터 최근 2∼3년 새 한국에 대한 일본의 직접투자가 꾸준히 늘고 있음을 감안하면 3·11 대지진은 한·일 간 기업 연대를 더욱 촉발시키는 계기가 된 것이다. 2004년 11월 이후 단절 상태인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현실의 양국 기업들은 활발한 유대관계를 다지고 있다.

한·일 FTA 협상은 2008년 이후 교섭 재개를 위한 실무자협의회, 국장급 사전협의회가 진행 중이지만 별 진전이 없다. 양국 기업들이 공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가는 만큼 한·일 FTA도 서둘러 구체화되기를 기대한다. 한·일 경제공동체는 이미 시작됐다.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