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선진] 아세안 외교에 눈 돌릴 때
입력 2011-07-04 18:06
우리는 아세안(ASEAN)의 중요성을 너무 쉽게 간과한다. 우리나라와 무역 규모가 가장 큰 곳은 중국과 아세안이다. 한국 해외 투자의 최대 대상지는 아세안이다. 그 다음이 미국, 중국이다. 아세안에 대한 투자는 2004년 해외 투자 총액의 8% 수준에 불과하였으나, 꾸준히 증가하여 작년 18% 수준이다. 반면, 대중국 투자는 2005년 이후 계속 하락세이며, 대미국 투자는 2008년부터 늘고 있다.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국 기업을 싼 가격으로 사들인 결과다. 여러 면에서 아세안은 한국에게 경제적으로 중국, 일본, 미국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우리는 지난 10여년 동안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몇 가지 교훈을 얻었다. 첫째는, 경제위기가 새로운 형태의 안보위기라는 것이고, 다른 교훈은 미국과 일본이 안보위기 때와는 달리 경제위기 시에는 한국지원에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앞으로도 있을 경제위기에 대하여 한국 스스로 대비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반도 분단과 북한의 위협이 현존하는 한 4강 외교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국가의 번영과 새로운 형태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올림픽, 월드컵도 유치해야 하고, 어려울 때 우리의 입장을 지지해 줄 이웃도 필요하다. 한국 외교의 외연을 넓히라는 주문이다. 이의 첫 작업은 역시 이웃, 아세안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아세안에 대한 이해 부족이 우리의 발걸음에 족쇄를 채우고 있다. IMF 2010년 GDP 추계에 의하면, 한국은 세계 15위 경제 규모이나, 인도네시아는 18위, 여타 주요 아세안 국가들은 30위권에 포진하고 있다. 작년 한국의 GDP는 아세안의 56% 수준이다. 2004년까지 양측 경제 규모가 비슷하였으나 그 이후 한국이 거북이걸음을 하는 사이, 아세안은 토끼걸음으로 한국을 크게 앞질렀다. 한국과의 격차는 앞으로 더욱 확대될 것이다.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부상하고 있는 동남아 지역의 거대한 경제권이다. 아세안은 2015년 경제 통합 목표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남부지방과 아세안의 연결전략이 현재 진행 중이고, 미얀마∼중국 국경지역에서 인도 경제까지 합류하고 있는 현장이 목격된다. 중국 남부와 아세안을 여행하면서 비자 없이 국경을 넘거나, 화물차가 국경을 넘어 운항하는 것을 보고 지역 통합의 속도에 놀랐다. 중국의 250억달러 아세안기금, 일본의 5,000억엔(약 55억달러) 메콩 유역 개발 사업을 포함, 각국의 원조와 투자가 계속 들어오고 있다. 미국 오바마 정부도 미·아세안 정상회의, 메콩 하류 외교부장관 회의,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참가 등 파격적인 아세안 접근 정책을 내놓고 있다. 한국은 메콩 유역 국가부터 비자 면제조치를 취하여 ‘열린 이웃’의 모습을 보여 주고, 메콩 지역과의 외교부 장관 회의를 곧 정상회의로 승격시킬 준비를 해야 한다. 대아세안 외교를 한층 격상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이선진 전 인도네시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