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규 “간이 녹을만큼 힘들었다”

입력 2011-07-04 21:58


김준규 검찰총장이 4일 끝내 사의를 밝힌 것은 검찰 총수로서의 지도력에 큰 상처를 입어 더 이상 조직을 통솔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명박 대통령이 “중심을 잡고 일해 달라”며 사의를 반려했는데도 입장을 고수한 이유 역시 이 때문이다. 김 총장은 검·경 수사권 합의안이 뒤집힌 데 대해 강한 불만도 드러냈다.

김 총장은 사표까지 불러 온 사태의 핵심을 ‘합의 파기’라고 지목했다. ‘팍타 순트 세르반다(Pacta Sunt Servanda·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라는 로마 법언도 인용했다. 그는 “장관들과 검찰총장, 경찰청장 등 주요 국가기관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최고 국가기관(청와대) 내에서 한 합의, 문서에 서명까지 한 약속마저 안 지켜진다면 과연 어떠한 합의와 약속이 지켜질 수 있겠느냐”며 강한 유감을 표했다. 경찰, 정부, 국회까지 아울러 비판한 것이다.

김 총장은 “경찰이 진정 수사권을 원한다면 먼저 자치경찰, 주민경찰로 돌아가고 사법경찰을 행정경찰에서 분리시켜 국민보호 장치를 만든 뒤에야 논의할 자격이 있다”며 수사권 조정 문제에 조직적으로 대응해 온 경찰도 직접 겨냥했다.

김 총장은 지난달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검·경 합의안을 수정 의결한 직후 사퇴를 결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이 유치하고 준비 과정도 주도한 세계검찰총장회의 때문에 즉각 사의를 표하지는 않았다. 손님을 초청한 주인이라는 책임감에 김 총장 자신의 애착도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총장은 “국제회의를 망쳐 국가적 위신을 손상시킬 수 없었다. 회의장에서 웃으며 있었지만 속으로는 간이 녹아날 정도로 힘들었다”고 말했다.

다음 날인 29일 대검 검사장급 전원이 사의를 표한 뒤 김 총장을 찾아가 “지금 사표를 던져야 한다”고 조언하면서 그의 사표는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됐다. 검찰 내부의 심각한 동요를 감지한 김 총장은 같은 달 30일 검찰총장회의 개막식에 참석한 이 대통령에게 “조직 관리가 쉽지 않다. 책임을 져야 한다”고 토로했다.

김 총장은 사퇴 발표 직후인 오후 2시30분부터 대검 간부 50여명이 참석한 확대회의를 주재했다. 그는 “마지막 회의가 될 것 같다. 중수부 수사 등 업무에 차질이 없도록 해 달라”고 당부했다. 박용석 대검 차장은 “어려운 시기에 용단을 내려주셨다”고 답했다. 김 총장은 10여분 만에 회의를 끝낸 뒤 집무실에 머물다 오후 4시30분쯤 대검 간부들의 배웅을 받으며 퇴근했다. 김 총장은 더 이상 출근하지 않고 해외순방 중인 이 대통령이 귀국해 사표를 수리하면 퇴임식을 열 것으로 보인다.

지호일 이용상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