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홍준표 체제로] 한나라 최고위원 당선자 4인
입력 2011-07-04 18:50
유승민, 친박의 힘… ‘대표선수’ 깜짝 2위로
친박근혜계 대표로 지도부에 입성했다. 특히 전대 전날 여론조사에서 대구·경북(TK)의 투표율이 전국 평균을 웃돌았던 점도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원, 여의도연구소장을 지낸 경제 전문가다.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특보로 선거 전략을 기획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17대 국회에 비례대표로 들어와 2005년 박근혜 대표 비서실장을 역임했다. 같은 해 10월 재보선 때 청와대 수석 출신인 열린우리당 이강철 후보에게 맞서 대구 동구을에 출마, 당선됐다. 대구시당위원장으로서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결정에 반발하는 목소리를 냈고, 당 대표 경선 동안에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정책을 비판하는 등 소신 행보로 ‘할 말은 한다’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나경원, 여론 지지 업고 ‘전대의 여왕’ 입증
‘탈계파’를 외치며 출사표를 던졌고, 국민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를 받아 당 지도부에 다시 이름을 올렸다. 한나라당 차세대 여성 리더로 꼽히는 ‘스타 정치인’이다.
판사 시절이던 2002년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정책특보로 발탁돼 정계에 입문했다. 강재섭 대표 때 대변인을 지내며 인지도를 높였고, 18대 총선에서 서울 중구 지역구 의원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 선대위 대변인으로 활약하며 이 대통령과 인연을 쌓았다. 지난해 6·2 지방선거 때는 서울시장 당내 경선에 나서서 오세훈 현 시장에 패배했으나 만만치 않은 득표력을 과시하며 정치적 입지를 굳혔다. 같은 해 7월 전당대회에서는 예상을 뒤엎고 3위의 성적으로 최고위원에 당선되며 ‘전대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원희룡, ‘총선 불출마’ 당권 배수진 무위로
한나라당 개혁의 아이콘, 소장파의 대표주자로 불린다. 이번 전대에서 친이명박계 주류의 지원을 받으며 졸지에 ‘구시대의 막내’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학력고사 전국 수석’ ‘사법시험 수석합격’ 등의 수식어가 붙는 수재이자 386 운동권 출신 정치인이다. 제주 출신으로 2000년 16대 서울 양천갑 국회의원으로 정계 입문한 뒤 2004년 최연소 당 최고위원에 올랐다. 이후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을 거쳐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하는 등 당내 유력한 차세대 대표 주자로 꼽혀 왔다. 지난해 7·14 전당대회로 들어선 안상수 대표 체제에서 사무총장을 맡았고 그때부터 주류로의 변신을 시도했다는 평가다. 이번 전대에 ‘총선 불출마’라는 배수진을 치고 출마해 한나라당 최초의 40대 당 대표에 도전했으나 결국 당심을 얻는 데 실패했다.
남경필, ‘원조 소장파’ 당 지도부 첫 입성
한나라당 쇄신을 원하는 당원·대의원과 당내 쇄신모임 ‘새로운 한나라’의 지원사격으로 지도부에 입성했다. 40대 중반 나이에 4선 의원으로 ‘영원한 소장파’로 불린다.
경인일보 기자 출신으로 부친인 남평우 전 의원이 1998년 사망하자 미국 유학 중에 귀국,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회창 당시 총재가 “당이 젊어져야 한다”며 영입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2001년 총재비서실 부실장을 맡았다. 다음해 여야 통틀어 역대 최연소 대변인에 임명돼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7월 전당대회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정두언 의원과의 후보 단일화에 합의하고 당권의 꿈을 접기도 했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으로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 본회의 통과 과정에서 여야 협상을 원만히 조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