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홍준표 체제로] “나를 뽑은 것 자체가 변화”… 계파 피해자가 ‘종결자’로
입력 2011-07-04 22:10
한나라당 홍준표 새 대표는 4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나를 당 대표로 뽑은 것 자체가 한나라당의 변화”라고 말했다. 그는 또 수차례 ‘계파 척결’이 첫 번째 과제임을 강조했다. 15대 국회를 통해 정계에 입문한 그는 4선 의원을 지내는 동안 줄곧 비주류의 길을 걸어 왔고, 번번이 계파의 벽에 막혀 꿈을 접어야 했다. 안상수 전 대표에게 무릎을 꿇었던 지난 전대 때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그는 계파의 수장이 되지 못했지만 한나라당 내 몇 되지 않는 대중 정치인으로 꼽힌다. 그는 1993년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로 슬롯머신 업계와 정계의 유착관계를 파헤쳐 6공 정권 실세를 구속시키며 ‘모래시계 검사’로 대중적 인기와 인지도를 얻었다.
정치는 시작했지만 17대 국회까지 비중 있는 당직을 맡지 못했던 홍 대표는 2007년 대선에서 당 클린선거위원장을 맡아 이명박 대통령의 BBK 의혹을 해소하는 데 앞장섰다. 일약 정권 탄생의 공신이 된 셈이다. 이어 18대 국회에서는 당 서열 2위인 원내대표까지 됐다. 당시 광우병 촛불집회로 흔들리는 국정을 바로잡기 위해 당과 정부를 넘나드는 군기반장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현안에 대한 쓴소리와 직언을 마다하지 않는 강직한 성품 때문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다는 지적도 받았다.
홍 대표는 이번 전대에서 당권에 도전한 7명의 후보 가운데 최연장자(57세)로 여당을 안정적으로 이끌 리더십과 당내 계파 간 화합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가 정치권에 몸담은 15년간의 지향점은 ‘혁신·변화’에 맞춰져 있다. 홍 대표는 한나라당이 ‘차떼기 정당’이란 오명 속에 최대 위기를 맞았던 2005년 당 혁신위원장을 맡아 개혁 작업을 주도했다.
또 17대 국회 때는 ‘반값 아파트’ 법안과 이중국적 취득을 통한 병역 기피를 원천 봉쇄하는 국적법 개정을 주도하며 ‘친(親)부자 정당’이라는 한나라당의 이미지 쇄신에 기여했으며, 지난해에는 당 서민정책특위 위원장을 맡아 친서민 정책 개발에 주력해 왔다. 스스로를 ‘진보적 보수주의자’라고 부른다.
그는 평소 “정의가 강물처럼 도도히 흐르는 사회”란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따라서 정권 후반기 그가 이끌 여당은 재벌이나 고소득자와 같은 기득권층의 이익보다 서민, 사회적 약자의 아픔을 대변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수층이 한나라당의 ‘좌클릭’을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홍 대표는 지난 전대에서 패배하자 “나도 이제는 조직 좀 해야겠다”고 했고, 올해 전대에서는 경선 초반부터 일찌감치 조직을 동원해 타 후보들을 압도했다. 막판 친이명박계의 전폭적 지원을 받은 원희룡 의원에게 맹추격을 허용하기도 했지만, ‘홍준표 대세론’을 앞세워 당내 중진의원은 물론 소장파까지 폭넓은 지지를 얻어 역전을 허용하지 않았다.
특히 친박계 의원들 대다수가 1인2표제 투표에서 계파 후보를 지지한 첫 번째 표를 제외한 두 번째 표를 홍 대표에게 대거 몰아준 것으로 분석됐다. 이 덕분에 홍 대표의 확실한 우위가 굳어진 셈이다. 한 수도권 친박계 의원은 “결국 박 전 대표를 도와 대선을 성공적으로 치를 적임자는 홍 대표뿐이라는 공감대가 (친박계 내에) 널리 형성됐다”고 밝혔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