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온] ‘아이스 스테이션 지브라 2’

입력 2011-07-04 17:38

소규모지만 미국 해병대와 소련 공수부대 사이에 사상자가 발생하는 전투가 벌어졌다. 칼바람 몰아치는 북극에서다. 소련의 미사일기지를 촬영한 필름을 담은 정찰위성이 북극권에 있는 영국의 기상관측초소 지브라 스테이션 근처에 추락하자 이를 회수하기 위해 출동한 미·소 양국 군이 직접 맞부딪친 것.

물론 픽션이다. ‘나바론’으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 알리스테어 맥클린이 1963년 발표한 소설 ‘아이스 스테이션 지브라(Ice Station Zebra)’를 바탕으로 68년에 만들어진 영화의 내용이다.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그로부터 40여년이 흐른 이제 ‘아이스 스테이션 지브라 2’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번에는 러시아군 대 캐나다군이다. 러시아가 지난 1일 북극해 주권 수호를 주 임무로 하는 2개 여단 창설계획을 발표하자 캐나다가 다음달 북극권에서 1000여명이 참가하는 사상 최대의 3군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3일 밝혔기 때문이다.

냉전도 끝난 지 한참 지났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 답은 간단하다. 자원 탓이다. 북극권은 지하자원의 보고다. 미국지질조사국에 따르면 북극에는 400억∼1600억 배럴의 석유가 묻혀 있다. 또 천연가스도 440억 배럴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석유와 가스 말고도 니켈, 철, 구리, 우라늄, 다이아몬드 같은 광물자원이 풍부하다.

이에 따라 러시아와 캐나다 외에 미국,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극해 연안국들은 물론 ‘세계 자원의 블랙홀’로 불리는 중국까지 나서 벌써부터 북극해 선점을 위한 각축을 벌여왔다. 비유적 용례로 쓰이던 ‘자원전쟁’이 자원을 둘러싼 진짜 군사적 충돌로까지 비화될지도 모를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실제로 알자지라 방송이 위키리크스가 입수한 외교전문을 인용해 지난 5월 보도한 데 따르면 블라디미르 비소츠키 러시아 해군사령관은 “북극에서 (국가 간) 힘의 재분배 현상이 나타날 것이고 이는 무력개입에 이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하긴 아프리카에서 피 튀기는 내전이 끊이지 않는 것도 자원 다툼이 큰 원인이고, 각국이 무력시위를 마다하지 않는 센카쿠 제도와 난사군도 등 남중국해의 국제 영토분쟁도 결국은 자원이 문제의 핵심이다. 민족(인종), 종교, 이념에 이어 바야흐로 자원도 열전(熱戰)의 주원인으로 부상하고 있는 셈이다. 욕심나면 힘으로 빼앗고 보는 ‘신석기 철학’이 21세기에도 맹위를 떨치는 현실이 안타깝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