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나누는 사람들] (25) 비영리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입력 2011-07-04 21:29
검사직도 대형로펌도 마다하고… 낮은 세상과 ‘공감’
여기 괴짜 변호사들이 있다. 공익(公益) 수호와 사회 취약계층·소수자의 인권 보장이 본업이다. 이를 위한 소송을 대리하고 법률자문을 한다. 수임료와 자문료는 전부 무료다. 길거리로 나가 마이크를 붙잡고 불합리한 사회 제도는 바꿔야한다며 외치기도 한다. 이럴 땐 변호사보다 사회활동가라는 명칭이 더 적합하다. 돈벌이와는 담을 쌓았다. 월수입은 200여만원. 그러나 이일을 하는 게 최고의 행복이라고 말한다. 국내 최초이자 단 하나밖에 없는 비영리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이야기다.
공감은 2004년 아름다운재단 사무실 한 귀퉁이에서 출발했다. 물꼬는 사법연수원을 갓 졸업한 염형국(37·연수원 33기) 변호사가 텄다. 공익변호사를 꿈꿨던 변호사들이 하나둘씩 찾아왔다. 검사직을 그만 두고, 대형 로펌을 뛰쳐나온 이도 있었다. 현재 변호사는 8명으로 불어났다. 상근활동가도 2명 이다. 사무실은 서울 와룡동 창덕궁 근처 건물 3층으로 옮겼다. 38평짜리 공간은 변호사와 상근활동가, 20여명의 인턴, 넘치는 서류더미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공감의 업무는 크게 공익소송 대리, 법률자문, 법제도 개선 및 연구조사로 나뉜다. 소송 업무는 여성, 장애인, 국제 이주·난민자, 성소수자, 저소득층 등의 인권과 관련된 것이다. 본안 소송, 고소·고발 등 한해 평균 80여건 정도를 처리한다. 주로 시민단체의 의뢰를 받지만 발굴하기도 한다. 개인적인 민·형사 사건은 원칙적으로 취급하지 않지만 공익 또는 인권 침해 문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면 기꺼이 맡는다.
그동안 공감은 각종 소송을 진행하면 사회 취약계층·소수자의 열악한 처지를 공론화하고 사회적 의제를 던졌다.
‘퇴직금이 월급에 포함돼 있다’는 회사에 맞서 도시가스 검침원 5명이 낸 퇴직금 청구 소송(지난 1월), 자신을 스토킹한 상사를 공개했다가 되레 항명죄로 군사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여군 장교의 무죄 소송(2008년), 17세 정신지체 여성 노숙인을 근거 없이 영아유기살해자로 몰아 15일간 불법 구금한 경찰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2010년), ‘현대판 씨받이 사건’으로 불리며 공분을 야기한 베트남 결혼이주 여성의 면접교섭권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2009∼2010년)이 대표적이다. 공감은 이들 재판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지난 2월 대법원이 8명의 ‘버마 민주화’ 활동가를 난민으로 최종 인정한 소송에도 참여했다.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를 통한 허위사실 유포를 처벌하는 근거가 됐던 전기통신법 47조 1항에 대해 ‘미네르바’ 박대성씨가 낸 헌법소원심판에 청구인 대리인으로 참여해 지난해 말 위헌결정을 이끌어 냈다.
차혜령(37) 변호사는 4일 “개별 사건 해결보다 법·제도 개선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불합리한 법·제도를 근본적으로 고치지 않는다면 공익·인권 침해 사례는 무한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공감은 국회와 시민단체 등이 주관하는 각종 법·제도 개선 공청회·워크숍에 발제자와 토론자로 나가 대안을 제시한다. ‘난민 등의 지위와 처우에 관한 법률’, 각종 개발로 한순간에 주거지를 잃는 서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강제퇴거금지법’ 등의 제정 작업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외국인 인신매매 피해자 지원을 위한 법률 안내서’ 등 실무매뉴얼을 만들어 시민단체의 법률 활동도 지원한다.
공감은 공익·인권법 교육의 산실이기도 하다. 매년 수십차례 관공서와 시민단체를 대상으로 법률 교육을 벌인다. 로스쿨생, 사법연수원생을 직접 찾아 특강을 하고 인권법 캠프도 개최한다.
특히 공익 변호사가 되고 싶어 하는 예비 법조인을 인턴으로 선발해 함께 일하면서 6개월간 실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매년 두 차례, 20여명씩 벌써 13차례 뽑았다. 다음달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입학을 앞둔 박형수(23)씨는 “공감 변호사를 도와 장애인과 국제 난민 등과 관련한 국내외 자료·실태조사 등을 하면서 공익변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굳혔다”고 말했다.
공감이 전방위로 공익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국민들의 힘이다. 공감의 운영비 중 96%가 개인과 기업·단체의 기부금이다. 개인 기부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69%에 달한다. 정기 기부자는 지난해 1200명을 돌파했다. 공감 변호사들은 기부금이 자신들을 좌고우면하지 않고 사회 소외계층을 위해서만 일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자 채찍질이 된다고 말한다.
2009년 공감 5주년 행사 때 변연식 국제민주연대 공동대표는 “공감의 변호사들은 토론회 때마다 맘 편히 초대할 수 있는 패널이었고, 국가의 폭력 앞에서 가장 먼저 생각나던 지킴이였다. 언제라도 전화를 걸어 법률상담을 할 수 있는, 인권활동가에게는 가장 만만하면서도 소중한 변호사였다”고 평가했다. 공감은 사회 낮은 곳의 인권을 위해 싸우면서 오늘도 ‘희망을 그리는 길’을 걷고 있다.
김정현 기자 k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