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수의 영혼의 약국 (105)

입력 2011-07-04 09:27

오늘의 [나]를 지탄한다

교회의 타락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회자되는 것이 ‘면죄부’이다. 이것은 12세기 들어 발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면죄부’가 왜 타락의 상징이 되는 걸까? 이것은 두 가지 기능이 발휘되었다. 당시에 만연했던 사제들의 타락을 경고한다(교황의 입장에서)는 자기들끼리의 상징성이고, 모든 사제에게 일률적으로 ‘면죄세’를 부과함으로써 교황청의 고정수입이 늘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면죄부에는 ‘정가표’라는 게 있었다. 공산품에 가격을 붙이듯, 무슨 죄에는 얼마, 어떤 죄는 얼마와 같은 가격이 매겨져 있었다는 말이다. 자, 이제 당시에 그들이 받아들인 죄의 값을 한 번 보자! 물론 알기 쉽도록 요즘 화폐 단위로 바꾸었다.

사기-5만6000원 문서위조-6만4000원 관직매각-7만2000원 절도와 강도-훔친 물건의 액수에 따라 변동 살인-4만8000원 근친상간-4만8000원 처녀능욕-5만6000원…. 뭐 이런 것이었다. 1910년대의 경제적인 정황이 요즘의 시세와 같을 리 없다. 그로나 어떻든지 교회는 받을 수 있을 만큼의 ‘면죄세’를 정해놓고 꼬박꼬박 안정된 세수(稅收)를 확보했던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욕망을 살찌움으로써 배부르게 되었고, 교회는 그들이 바치는 세금으로 인해 금고의 문을 닫을 수 없는 ‘일거양득’이 생겼던 것이다. 이것이 중세의 교회가 사회와 그 일반 대중에게 끼친 패악이다.

내가 사는 동네에 교회가 하나 있다. 수십 년 전에 내 친구 목사가 땅을 사고 건물을 짓느라 뼈골이 빠진 교회다. 결국 친구는 건축 부채를 갚을 수가 없어서 다른 목회지로 이동했다. 그의 후임으로 오는 목사가 부목사로 있던 교회에서 1억을 헌금해 주어서 그걸로 빚을 갚았다. 그 후 서너 차례 목사가 바뀌었지만 개척교회의 영세함을 벗어나지 못했다. 얼마 전까지 있던 목사는 10여 년 남짓 그 교회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형편에 대해서 늘 불안했다. 은퇴할 때까지 보조금이나 받고 살아야 할 일, 대학과 고등학교를 다니는 자식들을 공부시킬 일, 나이 들어가면서 느끼는 초라한 존재감 같은 것들이 그의 감정과 영혼을 짓눌렀다.

마침내 그는 결단했다. 유지재단에 편입된, 그가 섬기던 교회의 대지와 건물을 다른 목사에게 1억2000만원인가(본인들에겐 확인할 수 없다. 다만 들리는 소문이 그렇다. 그러나 퍽 확실한 소문이다)를 받은 후 교회를 넘겼다. 그리고 그는 지금보다 꽤 괜찮은 다른 교회 부목사 자리로 옮겨 갔다. 담임목사가 곧 정년으로 은퇴를 하는데, 은퇴비로 1억쯤 주고 기다리다가 담임목사 자리를 물려받는 조건이란다. 그래도 자기 몫으로 2000만원은 남았다. 남는 장사다.

중세 교회의 타락을 당시대의 민중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세상에 지옥이 있다면 로마는 지옥 위에 있다.” “교황이 선출되면 악마는 항상 외출을 한다.” 이런 민중의 비난은 교회의 만족할 줄 모르는 금전욕뿐만 아니라 이 금전에서 비롯되는 모든 악덕을 겨냥하고 있다.

모든 악덕에의 길을 평탄하게 해 주고, 동시에 모든 악덕의 방법을 제공하는 기술을 ‘목회’라고 여기는 오늘의 [나]를 지탄한다.

춘천 성암감리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