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20년, 민선 5기 1년] 대구 BRT-제주 노면전차, 사업성·예산 부족 ‘올스톱’
입력 2011-07-03 19:02
②지자체장 공약 실천 점수는
세종시와 동남권 신공항, 과학벨트 등 대형 국책사업을 둘러싼 갈등으로 온 나라가 홍역을 치렀다. 지금은 ‘반값 등록금’ 공약 때문에 혼란을 겪고 있다.
선거 때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공약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포퓰리즘 공약’에 대한 사전·사후 검증을 제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단체장들 설익은 공약 내뱉었다가 곤욕=3일 전국 지방자치단체 등에 따르면 김범일 대구시장은 ‘동네우물’과 ‘간선급행버스체계(BRT) 구축’ 등 주요 공약이 잇따라 무산돼 곤욕을 치르고 있다.
동네우물사업은 비상시 대체 식수원 공급 등을 위해 2015년까지 700억원을 투입해 시내 곳곳에 300개의 지하수공을 뚫어 천연암반수를 생산, 보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하수공을 뚫어 검사한 결과 23곳 중 3곳은 음용 불가 판정을 받았고, 나머지 20곳에서도 총대장균군 등 세균이 검출돼 사업추진에 제동이 걸렸다.
또 교통난 해소를 위해 2635억원을 들여 도입하기로 한 BRT 구축 사업은 용역 결과 ‘사업성이 부족하다’는 결론이 나 전면 보류됐다. 대구시 관계자는 “2015년 이후 사업을 추진할 수 있을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시장이 추진한 신공항 유치 사업도 실패했고, 낙동강 취수원 구미 이전 사업 역시 경북도와 구미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민선 5기 핵심공약 대부분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상태다. 시의회와의 대화를 거부하는 등 주요 현안마다 오 시장이 의회와 각을 세우면서 이해와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감사원은 최근 양화대교 구조개선 사업을 포함한 서해뱃길 사업의 경제적 타당성이 떨어진다고 지적, 사업 추진이 더 어려워졌다. 시가 한강 노들섬에 건립을 추진 중인 한강예술섬 사업은 올해 예산이 모두 깎여 임기 내 완공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오 시장이 ‘신개념 노인 복지 인프라’를 갖추겠다며 서울 신대방동에 추진하고 있는 서남권 행복타운 건립 사업도 시의회의 반대에 막혀 있다.
허남식 부산시장의 공약 이행 역시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았다. 부산경실련,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등 12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부산시민운동단체연대는 지난달 30일 허 시장의 주요 공약 16개의 이행 실적은 우수 2건, 양호 8건, 미흡 6건으로 비교적 순조롭게 이행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공약이 전체의 62.5% 정도라고 분석했다. 부산시민운동단체연대는 ‘차상위 계층에 대한 현황 파악 일원화 및 지원시스템 구축’과 ‘좋은 마을 만들기 지원조례 제정’ 등은 공약 이행 실적이 우수한 것으로 평가했다. 반면 ‘난개발 규제’ ‘시민위원회 설치’ ‘생태계 보존을 위한 낙동강 사업 전면 재검토’ 등은 임기 내 추진 가능성이 불투명해 공약 이행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우근민 제주도지사의 핵심 공약인 노면전차(트램) 도입 계획은 사실상 폐기된 상황이다. 제주시 노형로터리∼삼무공원∼시외버스터미널∼보성시장∼제주국립박물관 7.29㎞에 노면전차를 놓을 경우 건설비만 1483억8600만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됐다.
건설 이후 운영비도 만만치 않다. 대당 15억원인 차량 구입비를 제외하고도 인건비가 연간 15억6000만원, 동력비 6억5000만원, 차량유지 관리비 13억1000만원, 차량배터리 1억원 등 매년 46억2000만원 정도가 더 들어갈 것으로 예상됐다.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제주도의 살림살이를 감안할 때 큰 부담이다. 도 관계자는 “환경을 지키는 신교통수단이기는 하지만 가용재원이 워낙 뻔하기 때문에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노면전차 도입은 사실상 폐기된 상태”라고 말했다.
◇일자리와 복지 관련 공약은 대체로 순항=김두관 경남도지사가 내세운 대표적인 복지 공약인 ‘65세 이상 어르신 무상 틀니사업’은 비교적 잘 추진되고 있다. 당초에는 공직선거법 위반 논란 등으로 도의회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20억3500만원의 예산이 삭감되는 진통을 겪었으나 예결위원회에서 전액 복원됐다. 하지만 무상급식 공약은 과반 의석을 점유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반발로 예산이 3분의 1이나 깎이는 바람에 도시 저소득층과 농·산·어촌 학생 17여만명에게만 혜택이 돌아갔다.
김관용 경북도지사의 대표 공약인 ‘일자리 창출’의 진척률은 평균 42%로 나타났다. 김 지사는 지난해 7월 전국 광역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일자리 추진본부’까지 설치하고 서민일자리와 청년일자리 창출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 결과 지난해 일자리 창출 전국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되는 성과를 거뒀다.
전남도는 지난달 27일 박준영 지사의 공약사항을 점검한 결과 그동안 406개 기업, 5조5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고 1만5000여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밝혔다. 박 지사의 민선 5기 공약 이행률은 6월 현재 39.3%. 총 공약사항 80건 가운데 전남 순천∼전북 완주 간 고속도로 사업 1건이 완료되고 나머지 78건은 정상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 우주로봇연구센터 건립’ 사업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낮아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민선4기부터 핵심 공약으로 추진해온 뉴타운 사업의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도는 2020년을 목표로 12개 시·군의 구도심 23곳을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 뉴타운 사업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도내 일부 뉴타운 사업이 주민 반대로 차질을 빚었고, 이미 3곳이 뉴타운 지구 지정이 해제됐거나 포기 의사를 밝힌 상황이다.
◇공약평가제 확대=단체장이 내건 공약에 대해 평가단을 구성, 주민들이 직접 공약 이행 여부를 점검하도록 하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
시동은 대전 대덕구가 걸었다. 대덕구는 지난해 12월 공약사업주민평가단을 공개 모집해 22명을 위촉했다. 주민평가단은 3개 분과로 나뉘어 로하스 금강프로젝트 등 41개 공약사업 이행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광역단체로는 처음으로 광주시가 지난 4월 학계, 시민단체, 전문가 등 28명으로 구성된 ‘공약사항 이행 평가단’을 구성, 강운태 시장의 공약이행 평가 활동에 들어갔다. 평가단은 산업경제, 문화관광, 일반행정 등 6개 분야 100대 실천과제로 구성된 공약에 대해 매년 4월과 9월 두 차례 현장점검 중심으로 이행상태를 점검하고 시민들에게 그 결과를 공개한다.
시는 이를 위해 각 실·국 서무담당 사무관들로 매니페스토(공약 사전점검) 실천 정책담당자를 지정 운영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공약 남발을 견제하기 위해 매니페스토 제도 도입을 실무적으로 검토 중이다. 학계와 시민단체, 정당 등이 추천한 인사들로 구성된 중립적인 제3의 검증기구를 설치해 각 후보자가 제출한 공약을 사전 검증하고 이행 여부를 주기적으로 점검한다는 계획이다.
황일송 김경택 기자, 대구·창원·광주·제주=최일영 이영재 장선욱 주미령 기자 il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