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 좋아하다 ‘고래회충’ 고생할라… 유충 위벽 파고들어 염증·복통 일으켜
입력 2011-07-03 17:29
김모(52)씨는 최근 친구들과 바닷가 횟집에서 회를 먹은 후 바늘로 찌르는 듯한 심한 복통과 설사에 시달리다 밤늦게 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위 내시경 검사 결과, 통증의 주범은 위 벽에 박혀있는 길이 3㎝가량의 기생충이었다. ‘고래회충’으로 불리는 아니사카스 유충이 위벽을 파고들어가 염증을 일으켜 복통을 부른 것이다.
민물고기를 날로 먹으면 간디스토마(간흡충)에 감염될 수 있다는 것은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바다 생선회를 먹을 때도 ‘고래회충증’에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을 듯하다. 강동경희대병원 소화기내과 주광로 교수는 3일 “해마다 수온이 오르는 6∼8월에 고래회충증 환자가 증가한다”면서 “이맘때쯤 평균 5∼10명의 환자가 병원을 찾는다”고 말했다.
고래회충은 고래나 물개 등 바다 포유류 위장에 기생하다 바닷물에 배출된 후 이를 잡아먹은 생선의 내장에서 성숙하는 유해 기생충으로, 생선이 죽으면 근육(살)으로 침범한다. 붕장어(아나고)나 오징어, 광어, 우럭, 고등어, 연어, 대구 등의 생선을 충분히 익혀 먹지 않을 때 사람에게 감염될 수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이동호 교수는 “살아있는 생선을 금방 회 떠먹으면 감염이 안 되지만 아이스박스 등에 넣어 오래 보관하면 생선이 죽으면서 내장에 있던 고래회충이 살로 침투하고 이 회를 먹으면 유충이 몸 안에 들어 올 수 있다”면서 “회를 뜰 때는 내장과 살이 섞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래회충의 유충은 2∼3㎝ 크기(큰 것은 5㎝)의 실 모양을 하고 있어 육안으로도 식별이 가능하다. 따라서 회는 밤보다는 가급적 낮에 먹거나, 조명이 환한 곳에서 먹는 것이 권장된다.
고래회충증은 68% 정도가 위에서, 30% 정도는 장(소장, 대장)에서도 발생한다. 위·장벽을 뚫고 나가려는 유충의 습성 때문에 감염되면 콕콕 찌르는 듯한 윗배 통증과 구역질, 구토 증상이 나타난다. 드물게 종양이나 출혈, 장폐쇄 등 합병증을 초래하기도 한다. 생선회를 먹고 4∼6시간 후 갑자기 배가 아프고 구토 등 증상이 나타나면 급성 고래회충증을 의심해봐야 한다. 만성의 경우 증상이 없거나 수개월, 혹은 수년간 간헐적으로 복통을 일으키기도 해 감별이 쉽지 않다.
고래회충은 구충제로 치료가 되지 않는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내시경을 보면서 미세한 겸자(집게)로 위벽에 박혀있는 유충을 빼내는 것이다. 이 교수는 “생선회를 즐기는 우리나라 실정에서 고래회충증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면서 “여름철엔 휴양지 등의 위생 상태가 불량한 횟집에서 회를 먹게 되는 경우가 많아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