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세원] 쉼
입력 2011-07-03 17:40
장맛비로 온 땅이 흠뻑 물을 머금고 축축하게 젖어 있다. 이 장마가 끝나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오면 휴가를 떠나는 행렬이 줄을 잇게 될 것이다. 휴가는 부지런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꿀맛 같은 선물이다. 일을 통하여 성취감을 느끼는 것도 좋지만 바쁘게 달려온 삶을 잠시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휴식과 같은 여행을 위해서는 낯선 길로 향하는 설렘을 안고 조금은 느린 걸음으로 세상과 호흡을 맞추며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여유로움이 필요하다.
문명의 이기 속에 사는 사람일수록 자연 속에서의 휴식을 그리워한다. 좋은 휴식은 세상과도 아름다운 관계를 맺게 할 것이다.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파란 하늘에 그린 듯 피어 있는 뭉게구름을 바라보는 것은 메마른 영혼에 물을 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무딘 연장을 갈아 인생을 멋있게 조각할 수 있는 좋은 연장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휴식이다. 음악의 여운도 쉼에 있는 것처럼 진정한 휴식은 삶을 맛나게 한다.
인생의 반환점에 섰다고 생각했을 때 조용한 곳에서 쉬면서 묵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어 태백에 있는 예수원을 향하여 처음으로 혼자 길을 떠난 적이 있었다. 아침 일찍 청량리역에 도착하니 여름휴가를 즐기기 위해 떠날 채비를 갖춘 남녀노소로 역 광장은 아침부터 북적거렸다. 자판기 커피를 뽑아 들고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보니 모두들 일상을 벗어난다는 흥분과 좋은 사람과 함께 떠난다는 기쁨이 얼굴에 새겨져 있었다.
기차를 타고 가며 안개 속에서 만났던 멋진 경치들. 크고 작은 역과 옹기종기 모인 농가와 허물어진 폐가 등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마음에 담아두며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기차는 어느덧 태백역에 도착했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비까지 내리는데 울퉁불퉁하니 이리저리 구부러진 가파른 산길을 오르기가 쉽지 않았다. 깊은 산이 주는 위엄 속에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는 예수원에 도착하니 아름다운 풍경이 마음을 확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예수원의 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영적인 충만함이 느껴지며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요한 영성이 흐르는 그곳에서 내가 할 일은 조용한 침묵의 눈빛으로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영적인 휴식을 취하는 것이었다. 나와 같은 필요를 느껴서였을까? 자녀를 데리고 온 가족도 보였다. 자연 속에서 자신과 깊이 있는 대화를 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았다. 예수원에서의 시간을 통하여 부정적이고 불필요한 것들을 하나 둘씩 덜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충전의 시간을 가진 좋은 여행이었음을 알았다.
오랜만에 올해도 조용한 곳에서 쉼을 얻고 싶다. 세월이 흐르며 어쩔 수 없이 육신은 늙어가겠지만 영혼은 오래도록 풋풋함을 간직할 수 있도록 영적인 휴식을 얻을 수 있는 여행을 하고 싶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그런 쉼을 갖고 싶다.
김세원 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