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창우 (3) 중보기도 응답에 아버지가 변화되다
입력 2011-07-03 17:23
1960년부터 경기도립병원 외과 과장을 맡으셨던 아버지는 술을 많이 드셨다. 당시엔 농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하는 환자가 많았다. 아버지는 외과 의사이셨지만 장을 잘라내 망가진 식도를 대체하는 수술을 포함해 산부인과 수술까지 모든 수술을 잘한다는 소문이 나 있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수술환자뿐 아니라 경인지방에서 발생한 사고의 사체 부검까지 담당하셨다. 당시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었지만 아랑곳 않고 경찰관들과 새벽 한두 시까지 술자리를 갖고 경찰 지프차를 타고 집에 오시곤 했다.
68년 아버지는 인천에 이종찬외과의원을 개원하셨다. 하지만 여전히 의사친구들과 술을 많이 드셨다. 주일 예배는 빠지지 않으셨지만 형식적인 참석에 불과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보며 속만 태우셨다. 어머니는 새벽기도회에서 남편이 하루빨리 신실한 신앙의 길로 돌아오길 간구하셨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하교 후 집에 오니 긴 나무 상자가 우리 집 마루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시신이 들어있는 관이었다. “의사, 어디 있어! 내 아내 살려내란 말이야! 사람 살리는 게 의사지 죽이는 게 의사냐고!” 병원 업무도 마비됐다. 눈이 시뻘개진 사망 환자의 남편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행패를 부렸다.
사건은 이랬다. 병원 근처에서 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환자는 다른 병원을 몇 군데 거쳐 우리 병원으로 이송됐고 몇 분 뒤 과다 뇌출혈로 사망했다. 아버지는 사망 직전의 환자를 받아 손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졸지에 의료사고를 당했다. 하지만 사망자의 남편은 아버지의 실수라고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돈을 요구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별거 상태였던 남편이 아내의 죽음을 통해 한밑천 잡으려는 것이었다. 병원 안에 아예 돗자리를 깔고 업무를 볼 수 없을 정도로 큰소리로 행패를 부렸다. 그런 상황이 일주일 넘게 지속됐다.
“여보, 하나님께서 기도하라는 사인 같아요. 이제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주님 앞에 돌이키세요.” 초췌해진 아버지는 고개를 숙였다. “주님께서 정말 이 상황을 극복하게 도와주실까?” “그럼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는 이 사건의 진실을 알고 계세요. 여보, 힘내세요.”
인천 성산교회 목사님과 성도들이 사태 해결을 위해 중보기도로 힘을 보탰다. 어머니의 도움으로 아버지는 그때부터 다른 사람이 됐다. “좋소. 이제부터 술을 끊고 교회생활 열심히 하겠소.” 신기하게도 그렇게 행패를 부리던 환자 가족의 태도가 누그러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하게 마무리됐다.
충청도 양반이셨던 아버지는 철저한 원칙주의자였다. 그날로 술은 입에도 대지 않으셨다. 모든 공예배는 물론이고 새벽예배도 정성을 다해 드렸다. 교회 재정부장을 맡아 회계 처리 중 모자란 금액마저도 당신의 호주머니에서 채워 넣으셨다. 연세가 많으셨던 최준옥 담임목사님을 친아버지처럼 정성껏 모셨는데 매일 아침 인사를 드리고 영양 주사도 놔 드렸다.
아버지는 88년부터 3년간 인천시 의사회장을 지내셨으며, 93년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 회장을 맡으셨다. 97년부턴 인하대 부속병원 건강증진센터 소장으로 재직하다가 2004년 우리병원 고문으로 오셔서 중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미얀마 파키스탄 네팔 등을 다니며 의료선교 활동을 펼치셨다. 그리고 2008년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에게 큰 시련을 통해 회개와 삶의 변화를 재촉하신다. 크리스천에게 고난은 숨겨진 축복이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을 했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