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예수는 누구인가
입력 2011-07-03 17:46
(52) 부활과 둘째의 탄생 - 하나님의 가장 귀한 선물
처음 크리스마스는 오늘날 크리스마스와는 사뭇 달랐다. 기독교 문화권인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 크리스마스는 연중 가장 큰 축제 가운데 하나다. 큰아이는 올해도 어린이용 크리스마스 달력을 쳐다보며 산다. 크리스마스 한 달 전부터 날짜를 세어가면서 매일 날짜를 열면 그 안에 초콜릿이 들어있는 달력이다.
처음 부활 사건도 오늘날의 부활절과 달랐다. 가장 크게 다른 것은 오늘날의 부활절은 사람이 미리 준비하지만 처음 부활은 전혀 그러지 못했다는 점이다. 부활은 피조세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낯선 것이었다. 사람의 정신이나 영혼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 인간 역사나 사회구조 그 어디에 연결된 것이라는 어떤 단서나 암시가 전혀 없었다. 하나님의 전권으로 그분이 전격적으로 하셨다. 묵상하건대, 사탄도 몰랐을 것이다. 창세 이후 늘 효과적이었던 죄와 사망이라는 사탄의 무기가 부활 때문에 그토록 처참하게 꺾였는데 이를 미리 알았다면 예수를 십자가로 몰아가지 않았을 테니까.
마가복음을 따라 예수가 걸어간 길을 추적하게 된 까닭이 여럿 있었다. 종교에 대한 개인적인 취향이 있기도 했지만 신학자 선배가 많은 자극을 주었다. 결정적인 것은 아내가 둘째를 가지면서 생긴 상황이었다. 둘째의 임신 기간이 예수의 길을 따라간 나의 신앙적 순례 여정과 겹친다. 신학자 선배가 멘토가 되어주었다. 예수의 길을 추적해가면서 나는 오늘날의 기독교 신앙이 기독교를 탄생시킨 초기의 원형적 상황과 다른 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활 사건에서 그런 깨달음이 아주 깊어졌다.
부활은 여인들에게 갑자기 닥쳐왔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랬다. 사람이 한 일이 전혀 없었다. 태중의 아이가 장애를 갖고 태어날 수 있다는 것과 임신 중에는 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는 의료적 소견은 우리 내외에게 큰 충격이었다. 신앙적 소신이 뚜렷한 집사람과 장모님은 입장 정리를 분명히 했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니 출산한다는 것이었다. 이 입장에 동의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 나도 하나님께 매달리는 상황이 되었다. 부활 사건에서 사람의 역할이 전혀 없던 것과 상황이 비슷했다. 기도란 것이 얼마나 절절한 행동인가를 비로소 깨달았다. 마가복음 속으로 들어가 예수가 걸어간 발자국을 짚어가는 것은 지식 탐구가 아니고 절박한 순례였다.
마가복음의 마지막에 이를 즈음 아내가 출산했다. 지난 주간 목요일이다. 새벽기도 후에 진통이 심해져 프랑크푸르트 시내의 병원으로 갔다. 지난번 진찰에서 의사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말한 것이, ‘신체장애는 없는 것 같은데…’ 어쨌든 출산해 봐야 알겠다는 것이었다. 부활이 그렇게 하나님의 선물로 온 것처럼, 우리 둘째도 하나님의 선물로 우리 품에 왔다. 귀하고 예쁘고 아름답고 멋진 아가였다. 손가락 발가락 숫자부터 세었고, 눈 귀 코 얼굴 곳곳을 살폈고, 손과 발을 이리 저리 움직이게 해보았다. 의사가 말한다. “하나님이 너무 멋진 선물을 주셨네요!” 나는 울었다. 둘째의 임신 기간이 내 신앙의 새로운 탄생을 준비하는 기간이 된 것이 고맙고 또 고마웠다.
이 연재의 4번째 글 중의 개인적 상황이 가독성을 위한 소설적 상상이고, ‘예수는 누구인가’에 대한 마가복음 묵상은 성경에 근거했음을 언급한 것을 상기시켜 드린다.
지형은 목사 (성락성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