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독교 성지 순례] 일제 압박에 낙향, 독립의 꿈을 심다
입력 2011-07-03 15:28
(18) 강원 홍천 ‘한서 남궁억 기념관’
“모곡학교를 설립한 이유는 지방 청년에게 다소간이나마 시대에 적응하는 교육을 하고 지방을 발전하도록 함과 동시에 나는 원래 예수교 독신자(잘 믿는 사람)이므로 학교를 설립하여 그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그 부형에게 예수교의 취지를 보급하도록 하여 교도를 획득한다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1933. 11. 7 남궁억 선생에 대한 일제의 신문조서 중)
민족의 선각자, 남궁억
한서(翰西) 남궁억은 1863년 서울 정동 왜송골에서 태어났다. 1883년 근대식 세관원을 양성하기 위해 서울 재동에 설립된 최초의 영어학교에 입학, 이듬해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3년 동안 견습생으로 일한 것이 시작이 되어 어전통역관으로 고종의 신임과 총애를 받았다.
그는 1918년 선영이 있는 강원도 홍천군 서면 모곡리(보리울)로 낙향하기까지 시민사회운동가, 언론인, 교육가로서 또 민족의 지도자이자 독립운동가가 활동했다. 독립협회의 실질적 리더인 수석총무를 지냈으며, 민족 지도자들이 조직한 민간 결사단체 대한협회의 회장이 돼 일본의 조선 강제 병탄에 강력한 반대운동도 전개했다. 또 독립신문 영어판을 만들었고, 황성신문을 창간해 국내외에 우리의 실정을 알리고자 노력했다. 인재육성을 위해 1906년 현산학교(현재 강원도 양양초등학교), 1919년 모곡학교를 설립했다.
그는 일본의 회유와 감시가 점점 더 강하게 조여 오자 낙향했다. 낙향 후 1939년 소천하기까지 기독교 지도자로서의 삶을 실천했다. 그가 세례를 받은 것은 1910년, 48세 되던 해였다. 보리울이라는 산간벽지에 모곡교회라는 예배당을 세우고 교회당을 학교로도 사용했다. 민족과 독립을 상징하는 무궁화 묘목을 길러 전국의 예배당과 사립학교로 보냈다. 이와 함께 100여곡의 시와 노래를 지어 겨레의 가슴에 독립의 사상과 의지를 심고자 했다.
여생을 보낸 보리울
지난주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설악IC로 빠져나와 굽이굽이 펼쳐진 널미재를 넘으니 잘 정돈된 남궁억 선생의 유적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강원도 홍천 서면 모곡2리. 한서교회(옛 모곡교회) 현재호(59) 목사의 설명을 들으며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다.
먼저 남궁억 기념관으로 향했다. 기념관은 2004년 복원 예배당과 함께 완공됐다. 기념관 앞 광장에는 선생의 동상과 그의 필적을 담은 비, 3·1운동의 근인(뿌리)을 쓴 근인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기념관 안으로 들어서니 ‘내가 죽거든 무덤을 만들지 말고 나무 밑에 묻어 거름이나 되게 하라’는 선생의 유언이 눈에 띄었다. 전시장 안은 활동상을 알아볼 수 있는 연보부터 어록, 그가 창안해 여학생들에게 수놓게 한 무궁화 자수 지도, 모곡리와 선생의 인연이 정리되어 있다. 또 선생의 친필 서예본과 낙관인은 물론 무궁화 십자가당사건 재판기록, 독립신문 영인본 등 독립운동과 교육·언론 활동의 유물 등이 전시돼 있다.
특히 1933년 십자가당 사건의 취조 장면을 생생하게 재현한 디오라마와 무궁화운동의 성지인 모곡리 언덕을 재현한 모형도 설치돼 관람자의 이해를 도왔다.
기념관 옆에는 전통적인 한옥 양식의 모곡교회가 있다. 이곳은 1919년 선생이 현재 자리에 예배당을 설립해 ‘무궁화운동’을 전개했으나 1933년 ‘무궁화사건’으로 구속되고 일제에 의해 강제로 폐교된 것을 복원한 것이다.
예배당에는 가운데를 천으로 가려놓고 남성과 여성 신도를 분리해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재현한 모형과 많은 항일애국지사의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또 선생이 지은 ‘삼천리반도 금수강산’ ‘조선지리가’ ‘무궁화동산’ 등도 직접 들을 수 있다.
우리 민족의 얼을 담은 무궁화
모곡교회 옆으로는 선생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63년 이름을 바꾼 한서교회가 세워져 있다. 교회 앞엔 2만㎡에 80여종 2000그루가량이 심어진 무궁화동산이 조성돼 있다. 무궁화동산은 2000년에 마련됐다.
1995년 부임, 선생의 신앙과 애국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현 목사는 무궁화 정신이 바로 기독교 정신이라고 말했다.
“생명력이 강한 무궁화는 석 달 열흘간 꽃이 피고 집니다. 이것은 늘 새로운 꽃을 피우기에 나날이 새로워지는 우리 민족의 진취성과 닮았습니다. 또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강해지는 기독교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그동안 한서교회는 나라꽃 무궁화사랑 가족체험 행사, 무궁화 묘목심기, 마라톤 대회 등을 통해 무궁화 정신을 전파했다. 올해부터는 무궁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캠프 형태의 사랑학교를 진행할 예정이다.
현 목사는 “오늘날에는 급격한 변화로 피폐해져 가는 우리의 가슴 속에 무궁화를 심고 가꿔야 한다”며 “사랑으로 관계를 회복하는 사랑회복운동이 21세기의 무궁화운동”이라고 피력했다.
승용차로 2∼3분 거리인 한서초등학교 뒤에 위치한 선생의 묘역도 빼놓을 수 없는 답사 코스다.
홍천=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