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wing’ 작가의 마음이 보인다… 학고재 ‘한 획’전서 국내외 작품 38점 선보여

입력 2011-07-03 17:34


“태곳적엔 법이 없었다. 순박이 깨지자 법이 생겼다. 법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한 획에서 나왔다. 한 획이란 존재의 샘이요, 모습의 뿌리다. 한 획의 법은 스스로 세워야 한다. 무릇 한 획의 법을 세운 사람은 무법(無法)으로써 유법(有法)을 만들고, 그 법으로써 모든 법을 꿰뚫을 것이다.” 중국 청초의 화가이자 이론가인 석도(石濤)의 ‘일획론(一劃論)’ 중 일부 내용이다.

한 획의 의미와 중요성을 역설하는 ‘일획론’을 현대미술에 적용하면 작업의 기초가 되는 드로잉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슴 속에 한 폭의 그림이 그려지고, 팔이 움직여 붓을 부리고, 붓이 먹을 부려 만물의 형상을 그리는 작업. 드로잉은 그 자체로서 완성된 것도 있지만 작품을 구상하고 정리하는 수단으로 그려지므로 작가의 내면과 습성을 날것 그대로 볼 수 있는 자료다.

서울 소격동 갤러리 학고재에서 8월 21일까지 열리는 ‘한 획’ 전은 김태호 김호득 서용선 유현경 윤향란 이우환 정상화 정현 등 한국작가와 안토니 곰리, 류샤오동, 리처드 세라, 아니쉬 카푸어, 주세페 페노네, 샘 프란시스, 시몬 한타이 등 외국작가의 회화와 드로잉 38점을 선보인다. 각기 표현방식은 다르지만 한 번의 붓놀림이 갖는 에너지와 이를 위한 작가들의 태도는 상통한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15명을 포함한 작가들은 자신만의 언어와 생각을 잘 드러내는 방법을 찾기 위해 한 획을 그리면서 무수히 많은 실험과 연습을 한다. 서용선에게 한 획이란 몸속의 기운과 이미지가 감도는 한 호흡이다. 이미지를 구상하면서 내리긋는 순간 자신의 습관이 드러나므로, 일관성 있는 흐름을 위해 드로잉을 하면서 형태와 기법에 대한 실험을 거듭한다.

유현경은 긴장의 연속이자 용기가 필요한 새로움에 대한 시도라고 한 획을 규정한다. 그의 자화상 ‘모습’과 ‘일반인 남성 모델 K-서울 마포구 합정동’에는 다양한 그리기의 실험이 엿보인다. 윤향란의 드로잉은 프랑스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삶의 압박과 부담감을 해소하기 위한 행위이다. 그의 한 획은 삶의 애환을 놀이로 승화시키는 자신과의 교류이기도 하다.

류샤오동이 ‘인왕산’을 작업하며 사용한 팔레트에는 색상과 붓놀림의 흔적이, 정현의 녹슨 철 드로잉에는 시간이 남긴 흔적이 각각 배어 있다. 생각과 감정을 함축시킨 김태호, 자연의 기운과 움직임을 표현하는 김호득, 단숨에 긋는 한 획의 존재감을 강조하는 이우환, 고요한 이미지를 담아내는 정상화, 자연의 생명력을 그리는 주세페 페노네 등의 작품이 강렬한 에너지를 전한다(02-720-1524).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