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75) 17세기 별거 부부의 편지
입력 2011-07-03 17:34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유명한 곽재우(1552∼1617)의 종질(사촌형제의 아들)인 곽주(1569∼1617)는 지금의 대구시 달성군 현풍면 대리에 살면서 첫째 부인과 사별한 후 하준의(1552∼?)의 맏딸 진주하씨와 재혼해 슬하에 4남5녀를 두었답니다. 그러나 결혼 초기 부인 하씨가 전처 아들과 갈등을 빚자 별거를 결정하고 “따로 살자”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무슨 일로 집안이 조용한 때가 없는고. 하루이틀도 아니고 자네의 마른 성질에 어찌 견디는고. 자네가 ‘한데 살기 편치 아니하다’고 말하면 다음 달로 제각기 들어갈 집을 짓고 제각각 살기로 하세.” 남편은 본가 근처 소례라는 마을에서, 아내는 논공이라는 마을에서 떨어져 살았답니다. 하지만 몸은 따로 있어도 마음은 하나였는지 부부는 수시로 편지를 주고 받았지요.
출산을 앞둔 아내를 초조하게 기다리며 보낸 편지는 요즘 이런 남편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애틋합니다. “산기가 시작하거든 즉시 사람을 보내소. 밤중에 와도 즉시 갈 것이니. (중략) 종이에 싼 약은 내가 가서 달여 쓸 것이니 내가 아니 가서는 자시지 마소. 비록 딸을 낳아도 절대로 마음에 서운히 여기지 마소. 자네 몸이 편하면 되지 아들은 관계치 마소.”
남편의 편지에는 아이들의 병치레를 걱정하는 내용이 자주 나오는데 “종기에는 소주가 가장 좋으니 꿀 위에 소주를 가득 넣어 보내소”라고 치료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달라는 당부와 함께 “사월에 여뀌를 뜯어 방아에 찧어 물에 섞어…”라며 죽엽주 만드는 법을 적은 편지도 썼답니다.
400년 전 금슬 좋았던 부부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이 편지들은 1989년 현풍곽씨 후손들이 12대 조모(진주하씨)의 묘를 이장하던 중 발견했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보낸 105통, 시집간 딸이 친정어머니에게 보낸 42통, 아내가 남편에게 쓴 6통, 하씨 친정어머니가 보내온 편지 등 172통이 외출용 장옷 4점, 치마 3점, 저고리 9점, 바지 17점과 함께 발굴됐습니다.
출토된 유물들은 후손들에 의해 곧바로 국립대구박물관에 기증되고, 93년 중요민속자료 229호로 지정됐지요. 전처 자식들과 이른바 ‘계모’와의 갈등을 별거라는 방법으로 풀어나간 17세기 조선시대 부부의 삶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랍니다. 또한 의복류는 당시의 복식 연구에 큰 도움이 되고, 각종 치료법은 만연한 전염병을 퇴치하는 지혜를 엿보게 합니다.
국립대구박물관(관장 함순섭)이 하씨 묘에서 출토된 편지와 복식을 공개하는 ‘4백년 전 편지로 보는 일상-곽주 부부와 가족 이야기’ 특별전을 9월 18일까지 연다고 합니다. 갖가지 사연이 담긴 편지를 통해 옛 부부의 생생한 일상과 인간적인 진솔함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이혼하는 요즘 세태에 시사하는 바가 있는 전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광형 문화과학부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