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한 이야기 ‘올 어바웃 제인 오스틴’… 첫 문장서 범상찮은 예시 천년 인기작가 매력 탐구
입력 2011-07-01 17:51
제인 오스틴(1775∼1817). 20세기가 저무는 1999년 말 ‘지난 1000년 간 최고의 문학가’를 뽑는 영국 BBC 설문조사에서 셰익스피어에 이어 두 번째로 이름을 올린 작가이다. 그만큼 그는 영미권에서 가장 자주 리메이크되는 고전 작가인 동시에 세계적으로 수많은 마니아를 거느린 인기작가다. ‘올 어바웃 제인 오스틴’(도서출판 미래의창)은 스스로 ‘제인추종자(Janeite)’라고 일컫는 작가 캐롤 아담스 등 3명이 들려주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다.
우선 관심을 끄는 것은 오스틴 소설의 매력이 첫 문장에 있다는 지적이다. “재산이 많은 독신남이 반드시 아내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보편적으로 인정된 진리다.” 저자들은 오스틴의 대표작 ‘오만과 편견’의 이 첫 문장은 소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지를 미리 알려주는, 기막히게 영리한 장치라고 말한다. 첫 문장의 행간에 숨은 의미를 읽으라고 독자들에게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만과 편견’의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세 사람으로부터 받은 프러포즈를 거절한다. 이는 당대 젊은 여성들에게 요구되었던 일종의 행위 규범인 청혼에 대한 거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스틴이 쓴 모든 소설의 첫 문장에 경제력이나 돈에 대한 언급이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예컨대 소설 ‘엠마’의 첫 문장은 “예쁘고 똑똑하고 부유하며 안락한 가정과 밝은 성격을 지닌 엠마 우드하우스는…”로, 소설 ‘맨스필드 파크’의 첫 문장은 “30년 전에 헌팅턴의 마리아 워드 양은 오로지 700파운드만 가지고…”로 각각 시작된다. 이 역시 오스틴이 소설의 여주인공처럼 젊은 여성이 결혼하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이 당연히 결혼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풍토는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결혼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예나 지금이나 여성의 결혼 적령기가 남성보다 낮아야 한다는 데 있다. 오스틴은 남자보다 나이 어린 여성이 궁핍에서 빠져나오는 수단으로 결혼을 하는 관습적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주입시키고 있다.
오스틴 소설의 여주인공들은 한결 같이 산책을 좋아한다. “3마일이든 4마일이든, 종아리까지 진흙을 잔뜩 묻히고 그것도 혼자서 걸어오다니? 도대체 저 여자는 왜 저러지? 내겐 단지 구역질나게 거만한 독립심, 예의범절이라곤 없는 촌뜨기의 행동으로밖에 보이지 않아.”(‘오만과 편견’에서)
병에 걸린 언니를 보기 위해 치마를 휘날리며 달려온 엘리자베스는 물론이고 오스틴 소설의 여주인공들은 주위의 눈총을 사면서까지 산책 내지 과도한 걷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는 산책이나 걷기가 자신들의 열정과 에너지를 보여주는 장치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 열정이야말로 신랑감을 얻게 해주는 독립적인 개성이라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오스틴 작품에 등장하는 마차 종류로 등장인물의 재산을 파악하는 방법, 그 시대의 계층별 음식 문화, 사촌언니가 남긴 유일한 초상화를 후세에 개작하게 된 사연, 대저택의 으리으리한 울타리 설계에 관한 깨알 같은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한국의 제인추종자들에게도 단비 같은 저작이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