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앞둔 영화 ‘고지전’ 장훈 감독 “한국전쟁 시작이 아닌 처참했던 그 끝을 찍었죠”

입력 2011-07-01 17:46


영화 ‘고지전’의 장훈(36) 감독은 자신을 섬세하고 부드러운 남자라고 소개했다. 28일 서울 신문로2가 한 일식집에서 만난 그는 수백명의 연기자가 한꺼번에 등장하는 촬영 현장에서 NG가 나거나 제대로 된 장면이 나오지 않았을 때에도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고 했다.

“카메라를 돌리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일단 가만히 얼마간 촬영된 화면을 응시합니다. 제 나름대로는 이 장면을 어떻게 살려볼까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 동시에 연기자나 스태프에게 재촬영을 준비해달라는 무언의 신호를 보내는 거죠. 그러면서 배우들에게 어떻게 다시 찍자고 얘기할까 이런저런 궁리도 합니다. 화면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얘기하기가 편해지더라고요.”

전작 ‘영화는 영화다’와 ‘의형제’에서 두 남자의 대결을 드라마틱하게 엮어내며 충무로의 주목받는 감독으로 부상한 장 감독은 무엇보다 ‘고지전’의 탄탄한 시나리오에 반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의형제’를 개봉하기 전에 시나리오를 받았습니다. 사실 처음엔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라고 해서 끌리지 않았는데 시나리오를 읽고 그 자리에서 연출을 해보기로 결심했죠. 평소 감독 인생에 언젠가 한번은 전쟁영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이번이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습니다.”

오는 20일 개봉을 앞둔 ‘고지전’은 한국전쟁의 시작을 조명한 영화가 아니다. 1951년 6월 전선 교착 이후 2년2개월간 이어졌던 휴전 협상 기간 동안 동부전선의 최전방인 ‘애록고지’에서 단 한 순간도 전쟁을 멈출 수 없었던 병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원작인 소설 ‘DMZ’를 썼던 박상연 작가가 시나리오를 썼다. 박 작가는 한국전쟁의 총 사망자 400만명 중 휴전협상 기간 사망자가 300만명에 이른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모두가 알고 있는 한국전쟁의 시작이 아니라, 처참했던 전쟁의 끝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6개월간의 촬영 기간 중 1만4000여명이 동원되고 4만5000여발의 총알이 사용되는 등 총 100억원의 제작비가 들었다.

장 감독은 한국전쟁 당시 실제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던 한 고지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 한 장을 보고 큰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 사진은 전쟁을 겪지 않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며 “사진 속에는 수많은 병사들이 스러져간 곳, 수많은 포탄이 떨어져 반질반질해진 우리의 땅이 담겨 있었다. 그 사진을 보고 ‘전쟁영화가 아닌 전장영화를 찍어야 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규모 전쟁신 등의 볼거리로 관객들에게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면서도 극한의 전장 한 복판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는 것이다.

한편 이날 자리에는 영화에 출연한 배우 신하균과 류승수, 이제훈 등이 동석해 영화를 찍으면서 겪었던 즐겁고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나눴다.

김상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