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가정교회 산증인 셰모산 목사 주님 품으로

입력 2011-07-01 17:41


중국 가정교회의 산증인 셰모산(謝模善·사진) 목사가 지난 30일 고향인 장쑤(江蘇)성 양저우(揚州)에서 93세의 나이로 하나님 품에 안겼다. 셰 목사는 베이징 서우왕(守望)교회 김천명 목사의 목사안수를 직접 인도했고 지난 5월 우방궈(吳邦國)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에게 종교자유를 촉구하는 청원서를 보낸 데도 앞장섰다.

1918년에 태어난 그는 14세 때 하나님을 믿은 뒤 평생 주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했다. 40년대 화북신학원을 졸업한 뒤 ‘전도회간(布道會刊)’ 편집장을 지내다 55년 ‘성가오(聖膏·성스러운 기름)’ 잡지 편집을 맡았다. 이 잡지는 훗날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기독교삼자회)의 공식 기관지 ‘톈펑(天風)’이 됐다.

셰 목사는 절친했던 기독교삼자회 초대 주석 우야오종(吳耀宗) 목사로부터 삼자회에 동참할 것을 권유받았지만 단호히 거절했다. 거부하면 체포될 걸 알면서도 사양했던 것. 56년 5월 28일 밤 공안원들에게 끌려간 뒤 삼자회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옥생활과 강제노동을 하다가 23년 만에 풀려났다.

그가 취조당하던 중 복음을 전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이 천국에 갈 수 있느냐?”는 난감한 질문에 그는 “천국문은 열려 있습니다. 누구든지 들어가기 원하면 들어갈 수 있습니다…지금은 은혜의 문이 열린 시대요,구원받을 때라 모두 회개하고…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으면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취조하던 요원이 그를 내동댕이쳤다. “네가 이 기회에 전도하느냐”며 윽박질렀다. 그는 침착하게 “내가 말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당신들이 말하라고 시킨 것 아닙니까. 그럼 내가 대답 안 해도 좋습니까”라고 맞받아쳤다. “내 몸은 이미 주께 바쳤으며 내 생명은 주의 제단에 올려져 산 제물이 되었기에 사나 죽으나 나는 주님의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손목엔 쇠갈고리가 꽂혔다.

그는 133일간 손목에 수갑을 찼다. 수갑이 너무 꽉 조여져 살갗을 뚫기까지 했다. 고문과 고통 속에서 자살까지 생각했던 그에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고후 12:9)라는 음성이 들려왔다. 이 음성은 세 번이나 이어졌다. 셰 목사는 다른 죄수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형기가 2년 연장되기도 했다. 그 기간 노동 개조로 악명 높은 칭하이성 감옥에서 지냈다. 78년 형기가 공식 만료됐음에 불구하고 여전히 감옥에 있었다. 20년 이상 형기를 채운 60세 이상은 출소할 수 있다는 중국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의 명령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상하이에 있던 가족에게 돌아올 수 있었다.

출옥한 뒤 또다시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80년대와 90년대 두 차례 체포돼 각각 3개월 구치소에서 지내야 했다. 외국 선교단체는 수차례 그에게 중국을 떠날 것을 종용했다. 그때마다 “누가 중국에서 이 일(복음 전도)을 계속할 것인가”라고 답하곤 했다. 끝내 그의 아내는 미국으로 떠났고. 결국 셰 목사는 이혼을 해야 했다.

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